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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무늬
함주해 지음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외골수같이 꼿꼿한 질감과 침묵 앞에서 미끄러운 살갗이 민망하고 사방팔방 움직이는 관절들이 부산스러워 보인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무에 대한 애정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모든 그림에는 나무가 등장한다. 그리고 나무만큼 진중한 짧은 글이 곁을 지키고 있다.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글이 처음엔 '너무 슴슴~한가?' 싶었지만 이내 적응하게 된다.
이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목차였다. 책은 0.2℃를 시작으로 36.5℃까지 천천히 올라간다. 처음 목차를 훑어볼 땐 몇 페이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결이 촘촘했다.

글과 그림에 매료돼 느긋하게 읽은 탓에 페이지가 많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 느낌에 이 책에 담긴 글도 그림도 느릿 느릿하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도감이 없진 않다. 책의 더딘 속도에 마음이 조급해질 즈음, 내 속도가 궁금해졌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고 있는 걸까?
"가진 것도 없는데 비우기만 하는 삶"을 쫓고 있진 않았는지.
"살아야 할 시간에, 살아갈 준비를 하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진 않은지.
"가까운 곳에서 흐르는 아무 속도에나 몸을 싣고 내 몸이 아닌 듯 쓸려 가는 가격 대비 적당한 성능의 삶"에 안주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면 할 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있게 답할 용기가 없다.
누가 그랬다 내 삶이 내 것이 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 눈에 나무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꽤나 용감한 일생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