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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원작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올 정도였단 소식을 듣고 두근두근 기대가 무척 컸어요.
소감부터 말씀드리자면 "빈틈없는 구성력과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 다웠습니다. 작품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의 실력에 감탄했어요! 27이나 되는 각기 다른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거나 산만하지 않고 오히려 탄탄한 느낌이었어요. 27명이 바라본 한 여인의 모습도 바라본 숫자만큼이나 다각도여서 흥미진진했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소설을 구성하고 써 내려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데요. 실제로 작가는 한 작품을 탈고하고 나면 병원으로 직행했다고 해요.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죽은 것도 산재가 아닌지.. 어쨌든 소설은 흥미진진했고 아리송했습니다.

『악녀에 대하여』는 전후 혼란기에 화려하게 꽃피웠던 여성 사업가 도미노코지 기미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빌딩에서 떨어져 추락사한 그녀는 숱한 의문과 화젯거리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녀인가 아닌가, 자살인가 아닌가.
그녀는 토요일 오후 1시, 새빨간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채 자신의 빌딩에서 추락사했습니다. 그녀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드레스며 죽은 요일과 시간, 그녀가 살아온 모습 모두가 자살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토요일 오후 1시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행복한 미래를 계획한 채!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자살한단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 상식의 수준에선 그렇다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어쩐지 후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악녀인지 아닌지, 자살한 것인지 아닌지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죽음만큼 짙은 악녀의 모습을 기대했던 걸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화려한 사람의 추악한 추락을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꼬박 1주일을 생각했습니다. 내 머릿속에 엉킨 복잡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27명의 그녀에 관한 평은 극과 극을 오갑니다. 한편에선 그녀를 순결하고, 참하고, 기품 있고, 훌륭하고, 선한 인상을 가졌고, 한 송이 백합꽃같이 생겼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공손한 말씨를 쓰는 귀족 같다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그녀에게 꽃뱀, 악녀, 악덕의 화신, 음란 방탕한 귀족, 무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이든 보석이든 심지부터 빛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야지요."라고 말하면서 타인을 속이고 돈을 가로채고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어라라.." 순진한 척, 모르는 척하면서 위선을 떨었고, 어느 날은 아름다운 것이라면 조화도 마다않더니 또 어느 날엔 조화는 조화라서 싫다 했습니다.
27명의 그녀에 관한 기억은 모두 달랐습니다. 일례로 그녀의 두 아들도 같은 상황을 두고 첫째는 차별이었다 분노했고, 둘째는 애정이었고 배려였다 생각했습니다.
각자 자신이 본 대로 믿었고, 믿고 싶은 대로 그녀를 바라봤기에 모두가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본 것 중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27인의 오류에서 벗어나 아주 객관적으로 그녀를 평가하고 답을 내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할 말이 없지만, 그녀는 악녀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녀에게 홀린 걸까요?
가짜 꽃의 거짓 향기처럼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은 없다. 옮긴이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조화에 뿌려 놓은 향기는 거짓과도 같습니다. 본래 거짓이 더 매력적이고 그럴싸해 보이지요. 그녀처럼. 그녀는 순진하게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나봅니다. 순수하지 못했던 과정은 몸부림이었겠지요. 어떻게든 생화처럼 보이려고 몸부림치는 삶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데 어쩐지 그녀에게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이는건.. 오버겠지요? 오버였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