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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따위 - 내 청춘의 쓰레빠 같은 시들
손조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월
평점 :
전혀 의도한 게 아닌데 마치 포샵을 한 듯 사진이 찍혔다. 카메라도 시집을 알아보는 걸까?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좋았다.
그녀의 속을 뻔히 알면서 나는 속도 없이 좋았다.
좋은 시를 만나면 시가 좋아서, 어려운 시를 만나면 그녀의 글이 있어서 다행이라 느꼈다.

이 책은 지극히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내 또래인 것 같은데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았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서울대학에 들어오며 독립해 온 이야기, 고달팠던 서울살이들, 변변치 못 했던 그리고 나이에 비해 다소 짧아 보이는 사회생활 경력 등... 어찌나 솔직한지 책 곳곳에 짠내가 진동했다. 독립을 해본 적도 없고 취직이 어려웠던 경험도 없었던지라 막연하게 힘들다고만 알고 있었다. 요즘 청년들의 퍽퍽한 삶이 내 피부에 와 닿자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살짝 볼이 발그레 해졌다. 미안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담긴 시는 모두 국내 시인들의 시이다. 외국 유명 시인의 화려하고 멋진 시가 아닌 나와 비슷한 빛깔의 민낯이 담긴 약간은 특별할게 없어 보이는 시를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시따위』에 나온 시는 대부분 최근 몇 년 새 쓰인 시들이다. 그래서 또 좋았다. 뭔가 나도 시의 세계, 그들의 세계에 성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달까. 책을 읽으며 이런 시는 어디서 구해서 읽는 걸까 궁금했다. (답은 책의 가장 끝장에 있었다.)
어려웠던 시 중 하나였던 유하 시인의 《달의 몰락》은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으로 시작한다. 김씨 집안의 종손은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해 집을 나간다. 그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 노릇이 버겁지만 그런 쓸모없는 자신을 사랑한다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을 읽고 "뭥?"했다.
"달이 몰락한다 난 이미, 달이 몰락한 그곳에서
둥근 달을 바라본 자이다
달이 몰락한다, 그 속에서 미처 삐져나오지 못한
내 노래도 달과 더불어 몰락해갈 것이다."
작가는 화자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달을 따라간다 말했다. "집이라는 굴레"와 "모든 예절의 진지함"과 "편입의 안락"과 일상과 돈이 가져다주는 6펜스의 세계를 떠나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달의 세계를 향한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난 아직도 이 시를 이해하지 못 했을 것이다.
시에 대한 열정에 비해 그의 미래는 그다지 핑크빛이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달과 6펜스》에 나온 말처럼 괴로움은 인간의 품성을 높여주지 않고 오히려 천박하고 강하게 집착하도록 만든다. '달'에 홀린 '맹추'가 될지언정 '해를 품은 달'처럼 달도 갖고 6펜스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 꿈을 꾼다.
나이는 결혼 적령기에 도달했고,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는 꿈이 이뤄질지 말지는 도박과 같고, 똥줄은 타들어 가도록... 스스로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고백하는 그녀에게 이 책이 6펜스를 가져다주면 좋겠다.
더불어 싱글로 독립해 살고 있는 나의 베프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그녀와 나의 삶이 이리 달랐구나 몰라주어 미안하다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질지 모르겠다.
+

여행
- 이병률
어느 골목 창틀에서 집어온 대못 하나
집에 가져다 컵에 기울여 꽂아놓았더니
뚝뚝 녹가루를 흘리고 있다
식당에서 먹다 버린 키조개 껍질
뭐라도 담겠다 싶어 가져왔는데
깊은 밤 쩌억쩌억 소리가 들려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안다
공기 중이라 조개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나는 털면 녹 한 줌 나올는지
나를 공기로 쪼개면 나는 쪼개지기나 할런지
녹가루를 받거나
갈라지는 소리를 이해하는 며칠을 보냈을 뿐인데
머리카락을 남기고 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마음이 어질어질한 것이 나로 인한 것인지
기어이는 숙제 같은 것이 있어 산다
끝나지 않은 나는 뒤척이면서 존재한다
옮겨놓은 것으로부터
나를 이토록 옮겨놓을 수 있다니
그러니 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나 또한 "털면 녹 한줌 나올는지/ 공기로 쪼개면 쪼개지기나 할런지" 자신이 없다. 나의 이 열정적인 몸부림이 '뒤척임'수준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걸까?
작디 작은 못과 조개가 제 속의 녹가루와 제 밖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마음의 귀를 쫑긋 세워 봐야 겠다. 그럼 나도 언젠간 남는 장사를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