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다릴게
스와티 아바스티 지음, 신선해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엄마를 기다릴게』는 가족 이야기이다. 하지만- 아름답거나 훈훈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족 아닌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빠는 엄마를 학대했다. 그걸 지켜볼 수 없었던 형 크리스천은 아빠의 화를 돋구어 엄마 대신 자신을 때리게 한다. 일부러 엄말 위해 아빠를 자극해 자신을 때리게 한다. 얼마나 반복됐던걸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쯤은 도가 텄다. 그리고 엄만 결심한다. 도망치기로. 그래 엄만 자식을 지켜줘야 하니까 당연한거다. 하지만 집 앞에서 아빠에게 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루를 겪게 된다. 그렇게 아빠는 엄마와 크리스천을 돌아가며 학대했다.
 

학대를 참다 못한 형은 결국 가출하고 잠적한다. 그러자 아빤 이제 제이슨도 학대하기 시작한다. 결국 폭발해 아빠에게 대들고 때리고 얻어 맞다 내쫓긴다. 그리고 엄마에게 받은 주소 한장을 들고 멀리 떠난다.
엄마를 둔 채로.


형은 병원 응급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어야 했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하나씩 부러질 때마다 응급실 신세를 졌고, 매번 술집에서 싸우다 그렇게 됐다는 핑계를 댔다. 당시 형은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도 말이다. 또한 뇌진탕 이후 반복된 구토 증상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는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핑계를 댔다. 심지어 아빠가 형의 팔을 전기 버너에 얹어 형이 피부 이식술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때는 병원에 무슨 핑계를 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엄마를 때리면, 엄마는 청소를 한다. 그 인간이 엄마를 떠밀어 넘어뜨리고 마구 짓밟아 그 조그만 등에 구둣발 자국을 남기면, 엄마는 손걸레질로 바닥을 훔친다. 그 자식이 엄마를 강간하면, 엄마는 면봉을 꺼내어 타일 틈에 눌어붙은 찌꺼기를 닦아낸다.

 
 
 
엄마를 둔 채로 떠났지만 결국 형과 함께 돌아온다. 엄말 데리고 가기 위해 형제가 돌아왔지만 엄마는 아빠의 품을 떠나지 못한다! 읽는 내내 "왜?! 아들 둘 다 도망쳤는데, 그냥 걸어나와서 사라지면 되는데 왜??스톡홀롬 증후군이야?"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책의 남은 장수가 줄어들 수록 "나와라 나와라.." 수없이 주문을 외웠지만 엄마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그녀가 답답하고 싫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돈 이해할 것 같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통증을 당연히 여긴다고 한다.
마침내 다 나은 후에야 그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스톡홀롬증후군은 아니다.  
25년이다. 자그마치. 스물을 갓 넘겨 결혼하고 25년을 그렇게 살았다. 이 집이 그녀의 '삶' 자체 이자 보이지 않는 족쇄인 것이다. 이 곳에서 벗어나 한발짝만 벗어나 바라본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볼 수 있을 텐데 그녀는 그 한발을 결국 떼지 못한다. 그녀라고 생각이 없겠나?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 집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집을 나가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거란 협박, 그리고 정말 죽을 것 같은 폭력의 반복. 그리고
자신이 떠나지 않는게(아들에게로 도피하지 않는게) 엄마로써 두 아들을 지켜내는, 그녀가 목숨걸고 지키고 싶은 사랑인 것이다. 
 
아빠에 의해 뒤틀려버린 이 형제도 결국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가족'이 된다. 서로를 볼 때마다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 가장 아픈 상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죄책감도 들었을 것이다. 
형은 동생과 엄마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죄책감.
동생은 학대받는 형과 엄마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동시에 상대방을 원망한다. 하지만 이 둘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잘못은 아빠가 한 것이다. 

아빠가 엄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는건 내 책임이라고 늘 여겼다.
하지만 엄마의 무덤을 파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아빠가 판 무덤이다. 그 자식이 엄마를 그 안으로 떠밀어 눕게 하고 공포와 학대로써 그곳에 가둬버린 것이다. 엄마가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그 자식은 가혹한 발길질로 엄마를 다시 그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엄마는 이십오년동안이나 그곳에 누워 있었다. 그동안 온 몸의 근육은 무뎌지고, 관절은 굳었으며, 눈도 멀었다. 이제 엄마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빠, 그리고 스스로를 집이라 부르는 좁고 답답한 공간뿐이다. 엄마를 그곳에서 끌어낼 방법을 나는 모른다. 엄마 문제는 엄마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엄마가 왜 아빠 곁을 떠나지 않는지는 틀린 질문이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왜 아내를 때리는 걸까? 내 의문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아빠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결국 형제가 제 발로 나온 것처럼 엄마도 스스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형제들은
기다림을 선택한다. 그리고 형은 보스턴 대회 예선 피닉스에 참가하기로 한다. 매년 텔레비전으로 아빠가 지켜보는 그 보스턴 대회 말이다! 그리고 형을 위해 제이슨은 매일 새벽 함께 달린다. 형제이지만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다고.
세상 사람 모두가 지금보다 더 강한 자신이길 바라지만,
그 누구도 후회없이 싦을 헤쳐 나갈 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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