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갑자기 한 남자의 삶에 펭귄이 끼어듭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교사일을 시작한 청년 톰이 우루과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다 기름에 뒤덮여 폐사한 수천마리의 펭귄 더미 속에서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한마리를 발견하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자, 이제 어쩔건데? 왜 나를 씻겨주는거지? 이 구역질나는 오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기는 한거야?"

도와주려는 톰의 의도를 모르는 후안은 가족을 죽인 원수의 동족인 톰에게 거칠게 반항하며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톰은 펭귄의 몸을 덮은 타르를 꼼꼼히 씻겨 줍니다. 그제서야 진심을 안 후안은 어느새 톰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들입니다.

"이제 겨우 친구가 됐는데 왜 나를 다시 이 죽음의 바다로 보내는 거야?"

문제는 톰은 그럴 생각이 추오도 없는데 말이죠. ㅎㅎ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애써보다 결국은 아르헨티나의 학교로 데리고 옵니다!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톰은 안면홍조증에 걸릴 지경에 이르고 마는데요. 아르헨티나로 데려오는 중, 몬테비데오 터미널 도착을 조금 앞두고 후안이 실례를 하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훅 퍼져버려 오해를 샀다거나, 세관을 통과하던 중, 꽥 꽥 우는 통에 세관원에게 걸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톰과 후안은 행복한 동거를 시작하는데요. 실화라는데,,, 해피엔딩이 가능할까요?

 

펭귄을 보고 있자니 키도, 좁은 어깨도, 제구실 못하고 제멋대로 퍼덕이는 팔다리도, 성격도(?)비슷한 둘째가 자꾸 오버랩되더라구요.
열달 뱃속에 품고 있다 낳았지만 아이를 안고 집에 오는 순간 느끼는 오묘한 느낌은 애완동물을 구입해 집에 데리고 오는 것보다 오히려 톰처럼 휴가 중 펭귄을 마주치는 편이 더 비슷하지요.

톰은 생각보다 아주 잘- 후안을 돌봅니다. 욕조가 변으로 삭은걸 보고 후안을 위해 테라스에 자릴 마련해 준다거나, 쇼핑리스트 일순위로 청어인게 행복한 남자에요. 이쯤 되니 사윗감으로도 참 좋은 남자겠다 싶더군요. (딸도 없으면서ㅎㅎ)
후안도 사람을 놀라우리만치 좋아하고 잘 따르는데요. 펭귄의 적응력이 새상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후안 살바도르 데 핑귀노 공작'은 재치 있고 세련된 태도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흰색 넥타이에 연미복, 거기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것 같은 자신감, 빼어난 학습 능력과 폭 넓은 경험까지 두루 갖춘 후안은 여유로운 몸짓으로 손님들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눴다.

표현력도 어찌나 좋은지 사람들과 대화도 가능합니다!

내가 녀석의 부리에 청어를 갖다대자 후안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부리를 가슴에 묻고는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역겨움을 표현했다.
"싫어! 저리치워! 이 역겨운 거 저리 치워! 난 물고기만 먹는다고!"
후안은 마치 사람의 말을 하듯 정말 저렇게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이렇게 영특한 후안은 교내 스타가 되어 많은 친구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다 안다는 듯 들어주고 끄덕여주는 후안을 보고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요? 타르로 가족과 무리를 잃었지만 어렵게 얻은 제 2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지요. 후안에겐 모든게 정말 낯설고 두렵고 무서웠을 법도 한데 늘 용감한 펭귄을 볼 때마다 정말 기특하다고 책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던, 아이를 키우던 저처럼 가족과 오버랩되는 분들이 많으실 거에요.
요즘 부모가 스스로 자식과의 연을 끊거나, 반려동물을 버리는 분들의 기사가 참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정말 두눈을 질끈 감게 됩니다.
늘 예쁘고 사랑스러운 행동만하면 좋겠지만, 아기도 동물도 컨디션이 있는 생명체인지라 어느날은 순한 강아지 같다가 어느날은 삐죽삐죽 고슴도치만큼 까칠하기도 하죠.
생명을 책임진다는게 참 무겁죠.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겪어 볼 수 없는 무게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유가 이상하긴 하지만, 신화에 나오는 어느 형벌도 이만큼 무겁진 않을거에요. 어디서 선행학습도 시켜주지 않는 누구도 죽기 전까진 쉬이 풀지 못하는 평생의 난제가 아닐까요. ㅎ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는 제목만 보고는 쉽게 후루룩 읽고는 툭 던져놓을 줄 알았어요. 헌데 몇일 째 읽으며 제 독서대에서 내려가질 않네요. 까만 눈으로 레이져를 쏘는 펭귄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는데요. 분명 가볍게 쓰인 책인데요. 훈훈한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따뜻하게 합니다.

겉지를 벗기고 드러난 양장본 표지의 『the Penguin Lessons』라는 영어 타이틀을 보자 "?!" 했는데요.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 Lesson이란 단어를 쓴게 톰이 얻은 교훈(lesson)을 재미있게 풀어 우리에게 가르침(lesson)을 준다는 의미로 쓰인 중요한 단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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