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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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많이 지적받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 책은 냉철한 (매우 똑똑하기까지 한!) 이성으로 성서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제목과 목차를 볼 때까지만 해도 종교서적인데 21세기북스에서 나왔네?하고 생각했습니다. 1장, 2장 읽다보니 종교서적이 아니더라구요. 이야기의 중심에 성경이 있으니 종교서적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철학, 교양에 더 가까운 종교서적이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세계 최초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동시에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구약성서에 쓰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신약성서에 쓰인 그리스어를 비롯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고대 언어 문헌들을 성서 원전과 비교하여 연구해온 고전문헌학자인 이 책의 저자 배철현 교수는 그의 지식을 이 한권에 풀어 놓았습니다. 책 속의 질문 하나 하나를 읽어 나갈 때마다 한권이란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양의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철현 교수님의 지식의 끝은 어디인지 이 책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모두 16개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식은 성서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신화, 명화, 논어, 신곡, 주홍글씨 등의 문학작품들을 쫙- 펼쳐놓고 답을 찾아 갑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배철현교수의 전공을 십분 살려 성서를 한국어 그대로가 아닌 원서의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해석입니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고 접하기도 어려운 언어들을 성경 그대로가 아닌 더 깊이있게 해석하고 설명하는건 이분이기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교수님의 언어학, 철학, 문학, 예술적 지식들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져 있지만, 차곡 차곡 정리가 잘 되어있는 데다 쉽게 설명해 놓은걸 보니 역시- 교순님이구나!싶었습니다. 그냥 성경의 내용만 다뤘다면 그저 그런 설교집같았을텐데(21세기북스에서 그런 책을 내놓을리도 없겠지만요)말이죠.

프롤로그와 1장, 2장을 읽고 어렵다 싶으신 분들은 4장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기쁘지 아니한가?를 먼저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제 기준에는 16개의 질문 중 가장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아래는 4장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용서에 관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면서 두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나는 미완성작으로 알려진 <시몬과 아기 예수>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유작이 된 <탕자의 귀향>입니다. 젊어서부터 승승장구하던 그는 방탕한 생활과 가족의 불행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고 맙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모든 것을 잃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배철현 교수는 이 그림을 가장 감동적으로 설명한 학자로 '20세기 마지막 영성가' 헨리 나우웬을 꼽았습니다. 나우웬은 이 그림을 세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 둘째는 인류 이야기, 셋째는 신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영적 단계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영적 단계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며,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의 고민과 역경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림의 오른편에 아버지와 작은 아들의 감동적인 만남을 지켜보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붉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이가 큰 형으로 렘브란트는 바리새인으로 묘사합니다. 아버지의 나흘라가 머지않아 자신의 몫이 될 것이었는데 작은 아들이 등장하자 그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손은 장검을 단전에 밀착시키고 있으며 당장이라도 칼을 빼 동생을 찌를 태세입니다.
예수가 말한 '탕자의 비유'는 이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것이 아니냐?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인간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만족하며 늘 먼곳으로 떠나려 합니다. 작은아들처럼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에 파묻혀 극단적 쾌락을 추구하기까기 합니다. 그리고 소수만이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품이란 대상의 자격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작은 아들이 용서로 하나 된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마치 큰아들처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긴 칼로 모두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그는 당당한 체격과 무기를 지녔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가장 성공한 인물 같지만, 그의 치명적인 결점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는 사실 큰 아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간, 자신이 쌓아놓은 이기심이라는 제단에서 희생된 인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 가장 거룩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그 이데올로기, 그 신념, 그 원칙이라는 제단을 부수고 우리의 가까운 가족, 친족, 심지어는 원수까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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