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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국경의 도서관』은 무의미할수 도 있고 의미심장 할 수도 있는 국경을 중심으로 정 가운데 놓여 있다.
현실과 상상 속 세계라는 경계에 있는 도서관같은 이 책은 짧은 단편이야기들이 빼곡히 채워져 작은 도서관을 이루고 있다. 현실이 중요한지 상상이
더 좋은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느냐의 문제> 속 남자처럼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둘은 다르지만 하나이기도
하니까.
검은 글씨 위로 햇살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추기는 것도 아닌데 느린 독서를 하게 만드는 이 책이 참 묘하다. 많은 이야기들 중 내
눈에 띄고 마음에 담긴 몇편의 이야기가 있다. 똑같은 글도 누군가에겐 무의미할 수도 의미심장 할 수도 있으니, 이 국경을 잘
넘나드시길.
셰익스피어가 낭독회를 여는 <국경의 도서관>.
그
곳에는 전 세계에서 발간된 셰익스피어의 저서들이 가득 들어 있는 중세의 탑을 연상시키는 구조의 '셰익스피어의 방'이 있다. 일 층 입구 쪽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지를 두고 셰익스피어는 낭독을 준비한다. 청중은 스무명
남짓.
"음악이 사랑의 묘약이라면, 계속하여 연주하라. 나는
넘치도록 그것을 먹고 싶다, 사랑에 식상하여 병들어 죽을 때까지, 그 곡을 한번만 더 들려다오, 숨 막힐 듯 황홀하다, 아, 마치 바이올렛 꽃이
피어 있는 둑 위로 꽃향기를 훔치고 다시 풀어놓는 바람처럼, 달콤한 음악은 내 귓전에 출렁인다."
-십이야, 1막 1장
셰익스피어의 낭독을 듣고 있자니 고요한 한 낮에 나른하게 잠이 오는 것처럼 취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근사한 국경의 도서관 파티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마시길...
<나는 책갈피다>
장미가 책갈피에게 말한다.
"이해가 안 가 쉽게 찾는 게 뭐 중요하다고"
책갈피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세상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서점이었다. 그곳엔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의 존재
이유를 말해주는 그러니까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타났다.
내 책갈피도 그랬을까?
교보문고에서 눈길이 가 집어든 책갈피는 어느덧 나와 함께한지 십년이 넘었다. 연필, 라벨, 명함, 종잇조각 혹은 영수증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고 두말없이 나와 함께한다. 그렇게 책갈피는 내가 책 읽는 순간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함께 해 준다.
그런 책갈피가 가장 좋아하느 책이 있었으니 『르두테의 장미』 책갈피도 장미의 미모에
반했나보다. 어느 날 책갈피는 실수로 버려지게 되고 그곳에서 까칠한 누군가를 만난다. 그녀가 바로 장미. 장미의 붉은 꽃잎과 가시 때문일까.
그녀의 말투는 어느 이야기에서건 늘 까칠하다. 책갈피는 장미를 사랑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다른
무엇이었더라도 좋았겠단 생각에 이른다. 장미를 위해, 사랑을 위해 흙이 되는 것도 마다치않는 책갈피의 순수한 마음이 『어린왕자』와 『강아지
똥』을 생각나게 했다. 사랑엔 늘 희생이 따르나 보다.
<요스터파파쿠르쿠르
공원>은 1년에 딱 한달, 한달만 아름다운 공원이다.
너무 너무 아름답고 눈부시게 아름답고 기절할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공원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시월 한 달 뿐이다.
시월, 이른 아침, 투명한 이슬방울들이 나뭇잎이며 꽃잎에 초롱초롱 매달려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샌드위치와 레몬티가 든 종이봉지를 들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을 나선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심호흡을 하여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고, 나뭇잎이며 꽃잎에 초롱초롱 매달려 있는 이슬 방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에게도 공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공원은 사람들마저 아름답게 한다.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친구가 되게 해주는 묘한 매력도 갖고 있다. 어느 한 과학자가 이
공원을 방문하곤 이 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평생 공원 근처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십일월이 되자 지극히 평범해진 공원에 과학자는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지만 공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공원에서 만난 이에게 말했다. "시월의 이 공원을 보고 있자니, 단
한 가지 답이란 게 무의미해지더군요. 사람은 완벽한 것으로 행복해지지 않아요. 그렇죠?"
세상에 완벽한 것은 많다. 하지만 사람이 완벽할
순 없다. 완벽한 사람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징그럽지 않은가?
우린 모두 누군가의 '요스터파파쿠르쿠르
공원'이다.
평생의 한해 아름다울까. 선한 일을 한 순간을 모두 합치면
한해의 한달..아니 한주나 될까. 그렇게 순간 아름다울 수 있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그는 과학자처럼 날
연구하고 실험하고 분석하고, 일년 열두달 아름답길 바라지도 그렇게 되도록 뜯어 고치지도 않는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름다움이 꽃필
때 우리의 삶은 더 없이 풍요로워진다. 내가 꽃 필 때 내 삶도 풍요로워진다. 나로 인해 나 주변이 아름다워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
할 수 있다면 난 일년에 한달 아름다울지라도 '요스터파파쿠르쿠르 공원'인게 좋다.
동화같은 이야기 <버터 호랑이>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 몸이 버터로
만들어진 버터 호랑이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아주 추운 나라에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호랑이는 어느 날 배낭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죠.
커다란 빵과 색색가지 사탕, 담요를 챙겨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낮, 간질 간질한 느낌에
몇번이나 몸을 뒤척이던 그가 눈을 떴을 때, 하늘에는 동그랗고 노란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어요.
자다 깬 호랑이는 배가 고파 베고
자던 딱딱한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답니다.
그런데 딱딱한 빵에 보드랍고 노란 액체가 묻어 있는 거에요. 그건 바로 버터 호랑이의 머리에서
흘러 내린 버터였답니다.
"이렇게 맛있는 빵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호랑이는 자신의 몸이 조금 작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아, 재밌어,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그러던 호랑이는 어느 빵집에 다다릅니다.
아!
빵집이라니!!!!!!!!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퐁퐁퐁 풍겨 나오는 빵집을 버터호랑인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결국 갓 구워낸 빵을
한입 베어 먹곤 더욱 더 작은 버터호랑이가 되었죠.
그렇게 갓 구워낸 빵에 푹 빠진 호랑이는 결국, 아주 작아졌답니다.
이제 버터
호랑이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좋아하는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버터 호랑이>를 읽고 처음엔 너무 귀엽단 생각을 했다. 다시,,
낮잠에서 깨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추운 곳에서의 버터 호랑인 아주 강하고 컸을 것이다. 호랑인 사자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동물의 왕이 아닌가. 심지어 버터라니. 딱딱한 버터에 한번 칼이 꽂히면 여간해선 빠지지 않는다. 피한방울 나지 않는 무시무시한 버터
호랑이다. 훗.
크고 강하던, 세상 두려울게 없던 호랑인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본인의 몸이 작아짐에도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우린 내가 소유한 것에 관한 상실을 두려워한다. 말이 어렵나? 상상해보자. 내가 받던 월급이 줄어
1/10이 된다고. 괜히 상상했다. 에힛 ㅎㅎ
버터 호랑인 제 몸이 사라지는데도 좋아한다. 빵을 너무 사랑하니까.
나도 내 몸이 축나는데 기쁘다. 내 몸이
사그라져들어도 좋다. 그럼 난 변태인가? 아니다. 난 내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