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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기 - 김석희 소설집
김석희 지음 / 열림원 / 2015년 12월
평점 :
20대 청춘의
방황과 40대 중년의 현실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얼키고 설켜 아홉개의 단편 소설이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들은 문득 찾아온 소식을
통해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표지의 남자와 김석희 작가를 떠울리고 상상케 한다.
이를 테면,
<유리로 지은 집> 중의 박지문(혹은 박경호)은 60년대에 소설을 쓴
50대 중반의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였지만 한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고 리어카 책방주인이 되었다.
<하루나기, 술 권하는 세상> 문학적 열정이 뜨거웠던 불문과
학생이었던 현진걸 또한 그렇다. 88년에 등단했지만 창작의 길을 접고 번역에 종사했던 김석희 작가가 왠지
연관되는 건
나만그럴까?
대학다닐
때는 별볼일 없던 친구가 술도 연애도 잘하고 문학적 열정도 뜨거웠던 자기보다 훨씬 출세한것 같아 한편으로는 샘이 나고 또 한편으로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괘씸한 것은 친구가 아니라 이놈의 세상이었다. 외교관을 꿈꾸며 불문과에 들어간 그에게 문학병을 옮기고, 그 열병을 앓으며
졸업한 그에게 당장의 밥벌이를 떠맡긴 것은 바로 이 세상이었다.
젊은시절의 그는 밤마다 소설을 썼고, 해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해를
거듭하는 사이 의욕도 재능도 어느덧 사그라졌고, 다 꺼진 불씨 한점 가슴 한구석에 접은 채, 밥벌이를 찾아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는 것 자체가 이제는 타성이었고, 그나마도 술이 없으면 몸도 마음도 삐걱거렸다.
<하루나기>는 분명 소설책이지만 작가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것 같다. 혹시 작가의 삶이 아닐까? 감히 상상해
본다.
졸업반
시절 몇몇 친구와 함께 낙엽 지는 교정 벤치에서 찍은 사진 한 장, 망가진 만년필 한 자루, 녹슨 열쇠고리 하나, 겉장이 뜯겨져 나간 젊은 날의
애독서 한 권, 또는 같은 소절만 되풀이되는 레코드판 한 장조차도, 임자에 따라서는 거기에 얽힌 애틋한 사연과 더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다.
집을 옮기고 세간을 정리할 때마다 과거의 흔적들은 조금씩 바스러지다가 하나씩 둘씩 버려지고, 그 빈자리엔
시간의 알리바이들만
쌓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왠지 어디선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오래된 책장에서
꺼낸 낡은 소설집을 모닥불 앞에 앉아 읽는 느낌이랄까. 꽤 오래전에 쓰고 묵혀있던 소설이라 그런건지, 작품의 느낌이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김석희 작가는 이 책을 창작을 그만두기 전에 쓴 작품이라 했다. 그러니 내 느낌이 아주 틀린건 아닌 모양이다.
작가와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참 이 겨울을
따스하게 해 준다. 그래서 일까? TV 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요즘 아주 인기다. 심지어 그 시대를 알지 못하는 10대인
조카들이 열광하는걸 보고 깜짝 놀랬다. '과거'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이토록 대단한가
싶다.
누구나
한 때는 상처를 입게 마련이고, 그런 생채기가 없다면 어디서 추억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가. 상처 없는 과거는 사막과도 같은 것.
그늘도
없고 길도 없는 사막의 여로란 얼마나 고단하고 삭막한 것이랴. 일이 거기서 끝났다면, 그때 생긴 상처는 우리의 젊은 한때를 증거하는 표석이
되어, 어느 훗날 우리에게 과거의 현재를 즐기는 술자리라도 마련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태풍
뒤의 홍수처럼 밀려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휩쓸어버렸다.
1988년이면 내가 딱 드라마 속 진주와 같은 나이인 5살 때이다. 5살. 그저 먹고 자고 노는게 다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파마. 할아버지와의 댄스. 전설의 고향, 김완선, 박남정, 엄청 비싼 전축 그리고 그 전축을 깨알지게 분해한
내 동생.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세발 자전거. 날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고모(!) 등등...기억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이
중에는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듣고 알게 된 사실들도 있겠지. 어쨌든 나의 다섯살 시절에도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옛날의 기억들이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폐허
속에서 태어나 굶주린 유년을 간신히 살아남고, 조회 때마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며 중학교를 마치고, 멋모른 채 시월유신을 찬양하며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생활은 긴급조치의 최루탄 연기 속에서 질식당하고, 군에서 제대하자 어느 부대에 있었느냐는 의혹과 힐난의 눈총을 받고, 젊은 후배들의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애만 태우고,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시위 군중 속에 익명으로 끼어들어 주뼛주뼛 주위를 살피며 구호를 따라 외치고, 그러다
다시금 절망하고...
그렇게 그렇게 휘둘리고 시달리기만 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온 인생들에게, 이놈의 세상은 또 무슨 염치로 제물을 바치라는
것인가.
나에겐 한없이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 누군가에겐, 내 윗세대들에겐, 새 길을 개척하는 자들에게는 아픈 추억들이기도
하다. 작가도 그랬을까? 1988년이면 김석희 작가도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해이니 이 드라마를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하고 곱씹는 다는 것은 얼핏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반사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럼 어떠리 어쨌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시인을 꿈꾸는 친구의 열망이 한낱 허망으로 끝나면 어떤가.
인생살이라는게 때로는 허망에 휘둘리면서,
그러나 그
허깨비같은 원망에 매달리면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시인과
주방장.
시가 있는 곳에
맛이 있고,
맛이 있는 곳에 시가 있네.
시인은 맛을 노래하고
주방장은 시를 끓이네.
두 장인의 만남 속에 인생은 더욱
빛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