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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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오롯이

색깔을 짙게 한다. 하지만 존은

다르게 생각한다, 존 생각으론,

만약 이것이 시가 아니라

진짜 정원이라면, 그렇다면

그 붉은 장미는 다른 어떤 걸

닮을 필요 없다고,

다른 꽃도, 그늘진 심장도

닮을 필요 없다고,

(노래 SONG 중에서, p.43)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떤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외형과 내형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같은 씨앗이어도 메마르고 사람이 밟는 길에선 싹을 틔우기 어렵습니다. 산이라면 그렇겠죠, 정원이라면 가꾸는 이가 분명 싹을 알아보고 좋은 자리로 옮겨줄 것입니다. 좋은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장미는 다른 꽃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이니까요. 장미가 백합을 부러워한다면 여러분은 무어라 말해주고 싶으신지요.



시인의 정원 안에서 서로를 묶고 있는 자연은 빛과 공기(p.22-23), 우울을 품어주는 나무(p.13), 연약한 장미, 강인한 데이지, 날개를 비비지 않은 귀뚜라미, 싸우지 않는 고양이가 어우러집니다. 하지만 우리 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것처럼 정원의 사계절은 생각보다 치열합니다.



한여름

MIDSUMMER


내 어떻게 도와줄까, 너희들 모두

다른 걸 원하는데- 햇빛과 그늘,

습한 어둠, 메마른 열기-


서로 다투고 있는 너희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봐-


너희는 내가 왜 너희들에게

절망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네,

무언가가 너희를 어떤 전체로 섞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네


천 가지 목소리들로 뒤얽힌

한여름의 고요한 대기


각각의 목소리가 외치네,

어떤 필요, 어떤 절대를,



...



너희들을 하나뿐인 독특한 존재로

만들려 한 건 아니었어. 너희들은

나의 화신이었지, 모든 다양함이었지


들판 너머로 밝은 하늘을 찾다가

너희들이 본다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우연히 태어난 너희 영혼은

너희들을 확장한 어떤 것에

망원경처럼 고정되어 있어-


내가 만약 그 상승하는 징표,

별, 불, 분노에다

나 자신을 가두고자 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왜 만들겠는가?







정원은 자연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인위적'이라 눈총 받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시 속에서 만난 식물과 사람이 서로 포개어져 아주 다른 색을 내는 것 또한 정원처럼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품고 있어요. 처음 본 색에 정신이 홀린 아이처럼 여러번 반복해 읽자 그제야 색이 조금씩 눈에 익고 와닿기 시작하더라고요.


저처럼 도전정신이 투철하다면 이렇게 자기 속도에 맞춰 소화시켜도 좋고,

시가 어렵다면, 시집인척 함께 딸려오는 평론가와 옮긴이의 해설을 함께 읽으셔도 좋아요.

초록을 사랑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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