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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 세금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가?
오무라 오지로 지음, 김지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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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입니다. 정치 권력을 경계하고 사회를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고 예리하게 비판하죠. 이 때문에 신문은 종종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1712년, 영국은 신문사의 비판을 억제하고 군비 조달을 위해 신문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신문세는 신문지 각 장마다 부과됐고 납세 완료 도장이 찍힌 종이에만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어요.
영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식민지인 북아메리카에도 인지세 도입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도입하지 못했고 이 인지세 도입 계획으로 미국 독립 전쟁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맙니다. (p.47-49) 그 때 얻은 교훈 덕분에 영국은 부가가치세를 20%나 부과하는 높은 세율을 자랑하는 나라지만 신문은 여전히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어요.
이처럼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나라에서 '세금'을 어떻게 부과하는지를 살펴보면 국가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어요.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만 중요한 줄 알았지 걷는 방식에서 국가의 가치관이나 역사 흐름이 드러나는 줄은 몰랐어요.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세금 부과도 참 많았더라고요.

"세금 제도가 국가의 앞날을 좌우한다."
<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에는 난생 처음들어보는 온갖 진귀한(?) 세금들이 많았어요.
#설탕세, #소금세 등 먹거리 세금부터
부자들만 타던 자전거에 부과한 #자전거세
서양 서적을 독점하기 위해 만든 #양서세
혼자 살려면 돈을 내시오 #독신세
콧수염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수염세 는 신분과 재산 사정에 따라 차등 납부했다고 해요. 수염세를 만든 사람이 다름아닌 러시아 제국을 만든 표트르 대제에요. 진보적이고 국가를 번영시킨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는데 수염세 외에도 굴뚝세, 모자세, 숄세 등 독특한 방식으로 세금을 거뒀다고 해요.
온갖 세금 중에서도 가장 낯설었던 건 바로 '유방세'였어요. 여성의 가슴에 매기는 세금으로 불과 이백여년 전 인도에서 있었던 세금이에요. (p.77) 당시 인도는 영국의 교묘한 지배 방식 + 종교 대립 + 카스트 신분 제도의 갈등 + 부와 노동력 착취 문제 등 안팎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거기에 위정자들은 민중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어요. 그 중 하나가 유방세였답니다.
유방세는 신분이 낮은 여성이 길을 걸을 때 유방을 감추고 싶다면 내야 하는 세금이었어요.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가릴 수 없었고, 유방의 크기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스무살이 되면 관리인에게 유방을 측정당해야 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어요. (ㅠ_ㅠ)

농민의 부인이었던 난젤리는 카스트 제도 최하층에 속해 유방세 납부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방세를 납부하지 않았고 가슴을 가리고 다녔어요. 결국 징세관이 병사들과 함께 난젤리의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난젤리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도려냈습니다. 그리고 그 유방을 징세관에게 건넸어요. 난젤리는 결국 과다출혈로 죽고 남편도 장례식을 치룬 후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케랄라주에서 항의 운동이 일어났고 유방세는 폐지되었습니다.
부당한 세금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니, 인류의 발전에 비해 인권은 발달이 참으로 더뎠단 생각이 듭니다. 정책적으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가난한 사람에겐 적게 거둬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게 세금이 가진 방향성인데,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금의 방향이 너무 쉽게 좌지우지 되는거 같습니다.
역사가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지요. 진보가 있으면 퇴보도 있기 마련이란걸 알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지켜보고만 있기 참 힘이 듭니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얻을 수 있어 좋았지만 어쩐지 한편으론 현실만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