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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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태어나면 부모는 이름을 지어 부른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며 이름을 물려쓰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한 생명의 미래에 희망을 담아 이름을 새로 짓는다. 부모는 (자식을 향한) 바람(혹은 욕심)을 이름에 투영하고 지어준 이름대로 잘 살길 바란다.


우리야 당.연.히. 그래야 한다 생각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영 부담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태어났는데 어진 사람이 되라는 둥, 태산같은 사람이 되라는 둥.


희망의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 살든, 희망을 이루든, 희망을 나누든 어떻게 해석해도 좋은 의미만 가득한 단어를 골라 이름을 지은만큼 간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십대인 고희망 양은 종말을 기다린다.



그렇다고 죽고 싶어하는건 아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지도 않는다.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 시험 공부를 하고, 환경을 생각해 텀블러를 쓰고 빨대는 쓰지 않는다. 아이러니한가? 어른만 할라고.


어른들은 더하다.

아이들에겐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무단횡단을 밥먹듯 한다. 다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 어른들은 오류 투성이다.


부모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자라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삼촌도 게이란 이유로 모두에게 외면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립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희망이는 희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삼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하필 그때, 잠시 쉬는 듯 했던 찬송가 부대... 그쪽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라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가 육수를 뜰 때나 숟가락 포장을 할 때 늘상 흥얼거리는 노래, 할머니 방에서 늘 흘러나오던 노래, 너무 많이 들어서 의식하지 않아도 따라 부르게 되는 바로 그 노래(찬송가)였다. 삼촌도 노래를 들었는지 말하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 삼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p.108


"삼촌 그거 알아? 아빠가 국밥을 하도 만들더니 국밥이 되어 버렸어."
아마도p.189


어른이 되고 얻게되는 수많은 부담과 책임,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자유는 빨래에 섞는 1스푼 세제양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이 한 스푼이 물의 성질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것이지만 처음 어른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산적한 과제들에 먼저 압도된다.


슬픔, 괴로움, 후회를 오랫동안 끓이고 끓이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으로 굳어버린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고 희망인 오늘도 울음을 삼킨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처럼 희망차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사는 어른이 없다. 이정표가 없으니 길을 헤맬 수 밖에.

"살아남은 아이들의 공통점 말이야."

"모두 울고 있었어. 넌 부모님한테 혼나면서 울고 있었다고 했지. 나는 다락방에서 울고 있었어. J는 콘서트장에서, Q는 골목길에서 맞으면서 울고 있었어."

p.92



부모가 이름을 불러 주면 자녀는 그에게 날아가 꼭 꽃이 되어야만 하는걸까. 꽃이 되길 기꺼이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인정받길 바라는 이도 있다. 꽃이 아니라고 자책할 필요도 섭섭해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서도 한 손에는 욕심을 쥐고 놓지 못한다.



희망이가 쓴 소설 속에서 아이들은 눈물을 흘려 종말을 피한다. 어쩌면 희망에게 종말이 오지 않는 것도 수없이 흘린 눈물 때문 아닐까. 어제의 눈물이 쌓여 오늘의 희망이 되었다. 우리도 그래서 살아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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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남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의지로 모자이크를 지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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