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이 된다면 - 닫힌 글문을 여는 도구를 찾아서
캐시 렌첸브링크 지음, 박은진 옮김 / 머스트리드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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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동생을 안락사시키기까지 8년의 기록을 담은 「안녕, 매튜」를 쓴 저자의 신작이 머스트리드북에서 나왔습니다. 전작에 이어 <내가 글이 된다면>애서도 저자의 온화한 마음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은 분명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일꺼야.'라고 생각했어요. 번역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거든요. 표현을 정확하게 잘하면서도 순한 성품이 드러나는 단어, 문체도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다시 읽고 꼭 블로그에 기록하고 싶었는데 <내가 글이 된다면>이 선수를 쳤네요.





잊어버렸다기보다 기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야 안젤루



이십대가 되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던 당시의 저는 무거운 주제의 에세이 위주의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 중 인권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페미니즘에 대해 눈뜨게 해 준 책이 바로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Marguerite Annie Johnson)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입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가 되었는지 자꾸 눈에 밟히네요.)


(이 책의 저자인) 캐시 렌첸브링크도 마야 안젤루도 기억할 마음이 들지 않을 잊고 싶은 경험들을 글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잊는 것과 정반대로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시, 분, 초 단위로 들여다보고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일을 왜 했을까요?


제가 제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걸 피하는 것도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게으르길 택하고, 기억하지 못하기로 한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글을 끊을 순 없어 이렇게 책으로 글 언저리만 도는 블로거가 된 건 아닐까. 이렇게 고백하고 보니 제가 안쓰러워보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끔찍하게 여기고 우리 안에 꽁꽁 감춰둔 것이 밖으로 나와 빛을 받으면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p.180


공포 영화를 볼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공포의 대상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입니다.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어두워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무언가 다가오는게 느껴지는 그 순간. 확!

글도 비슷한가봅니다. 쓰기 전엔 늘 막연해요. "이걸 써야겠다!" 라고 마음먹고 pc를 켜거나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여는 경우보다, pc와 스마트폰의 화면을 밝히기 전까지 도대체 뭘 써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일단 앉으면 어떻게든 글이 나오니 신기하죠. 여기에 글쓰기 매력이 있나봅니다.



끈기 있게 버터라. 언젠간 이 고통이 도움이 될 날이 올테니.

오비디우스


자기규정, 자기검열처럼 부정적인 생각들이 고민이라면 글과 아주 멀어지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재미 있는 일들을 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친절한 독자를 상상한다거나, 책 표지 디자인 해보기내 글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재생목록 만들기몸 쓰는 일하기내 글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상상해보기퍼즐 맞추기 등 다소 시간낭비같은 일들을 저자는 추천합니다. (하지만 도움이 된다고.) 물론 '제목 뽑기 게임'처럼 직접적인 도움이 책에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전 딴 짓에 더 눈이 가네요. 전 아직 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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