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물권을 말하는 이유 - 그래도 된다고 물어보았는가?
헨리 S. 솔트 지음, 서나연 옮김 / 이다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약 이백여년 전만해도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롱받기 일쑤였다. '동물=고기'로 동물은 인간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오랜 관념은 생각보다 두꺼웠고, 그 벽을 깨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감정도, 생각도 없는 존재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옛 생각은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사냥을 즐기고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동물들을 죽여 도축하고 있다. (물론 톨스토이가 말에게 채찍질을 하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도 동물권을 존중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사회 분위기상 드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이나 소와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노예가 그저 노예인 한에서는 노예와도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노예는 단지 살아있는 도구이고, 도구는 생명 없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노예도 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법과 서약에 관계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예를 사람으로 본다면 공평하거나 불공평하게 다뤄질 수 있다."
p.44 (<니코마코스윤리학> 중에서)

한 때 사냥은 귀족들의 취미생활이었다. 토끼나 쥐는 해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암묵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사냥개를 풀어 토끼나 쥐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 절박함이 인간에겐 오락거리였다. 긴 시간 고통스럽게 서서히 동물을 죽이는 도구인 올가미는 지금도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사냥법 중 하나이다. 같은 바다를 쓰는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의 고래사냥의 시작은 새끼를 타깃으로 한다. 새끼를 잡아 피를 흘리게 하면 어미는 그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 모성을 이용한 잔혹한 사냥을 전세계가 반대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엔 채식주의자가 분명 많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 육식을 한다면 읽기 부담스러운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책은 채식주의를 옹호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읽다보면 육식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필자 또한 며칠째 고기가 소화가 되지 않는다.(ㅜ며칠 이러다 말겠지만 책의 여파가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인도주의가 숨쉬는 모든 존재를 감쌀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는 노예의 상황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이를 시작했고, 우리의 노동을 돕거나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동물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것이다."(p.20)

저자는 우리의 야만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과학'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면죄받는다. 과거엔 살아 있는 사람을 생체실험에 이용하기도 했다. 인권 관련 법들이 생기며 지금은 동의 한 사람이 죽은 뒤에 실험실로 옮겨지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죽기 위해 배송된다. 가죽은 옷과 가방, 소파가 되어 우리를 안락하고 멋지게 살도록 해주며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화장품으로 우리의 피부는 더 건강하게 유지된다.

<우리가 동물권을 말하는 이유>(원제:Animals' Rights)는 동물 권리 선언으로 평가받는 고전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책은 아니다. 필자도 새로 나온 "신간"인줄만 알았다. 불편함 때문인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못하고 있지만, 육식을 한다면 꼭 한번은 <동물권을 말하는 이유>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 다른 생명의 죽음을 거두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동안 우린 너무 많은 죽음을 모른 채 하며 살았다. 식탐이란 쾌락만 누릴 게 아니라 감사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시도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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