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에 관한 글이나 책, 영상을 볼 때면 늘 조심스럽다. 강한 어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매사를 이렇게 예민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본다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해 피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란 이유로 피할 수 없을 때도 많다.


<불편한 시선>은 누구의 시각일까. 여성은 예술계에서 피사체나 뮤즈로 활용되던 과거를 불편하게 보는 우리의 눈총일까? 누드화를 보는 당대의 그리고 우리의 관음적 시각일까. 누드화 속 인물의 날선 시선 속에도 불편함은 숨어있다. 예술이란 이름 하에 여성의 몸을 그리는 남성 화가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화가또한 아주 자유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시선은 어떠한가.


책에 담긴 소녀의 누드화들은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저자 또한 불편함을 감추거나 예술이란 이름으로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관음적' 시각이 명확했다. 예술은 관음적이어도 괜찮나? 지금의 포르노 영상이 있기 전 몇 십 년 전에는 남자들이 야한 잡지를 사 몰래 훔쳐보았다. 사진이 없던 수백년 전엔 그림으로 포르노를 즐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당대엔 소아성애로 평생 그림을 그리고도 잘 산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의 우린 그를 당대의 사람들과 동등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 당신이 지금 불편한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책은 이런 작품들만 모아 놓았다. 늙은 여성의 추함, 소녀를 향한 소아성애, 엄마와 모성애라는 판타지, 과거 여성의 성역할 등... 사회가 기대하고 바라는 여성들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여성이 남자에게 남성성, 여자를 위해 희생하는 태도나 매너 등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예술은 이런 판타지를 깨고 여성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 스스로 벗고, 드러내자 관음적 시각이 사라졌다.)


얼마전, 한 미술관에 링거수액을 담는 팩 안에 물고기가 담겨 전시되었다. 작품을 전시한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성과 이중성을 표현한 예술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결국 작품은 폐기되었다. 몇 마리의 물고기들은 이미 폐사한 뒤였지만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이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이중성'이라면 이를 없앴으니 우리 안에 자리잡은 선의 승리라고 보면 될까? 작가는 예술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렇게 반증되는 걸 뒤집어보면 예술이 아닌게 드러난 거 아닐까.

예술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이라면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는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불편하다고 의식하는 자체가 나는 좋은 것이라 본다.
나는 예술은 그 작품 하나로만 평가하기 보다 작가, 작가의 말과 사상, 관람하는 사람들의 평가, 태도 등이 모두 모여 이룬 '결말'이 진짜 '완성'이라고 본다. 예술은 우리를 드러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시킬 도구, 시발점에 불과하다. 그러니 신성시하지말고 불편한 시선으로 마음껏 즐기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