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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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전화나 SNS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편지로 모든 것을 해결했습니다. 편지를 통해 남몰래 비밀을 터 놓기도 하고, 약속을 정하고, 거래를 계약하고, 정치적 뜻을 함께 나누고, 사회적 쟁점을 논하기도, 거짓을 말하기도 했어요. 괴테는 편지를 두고 "삶의 즉각적 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편지를 쓴 이의 생각이 숨김없이 담겨있습니다.

<우편함 속 세계사>에는 다양한 편지가 담겨 있습니다. 쐐기문자(쐐기 문자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중동에서 젖은 찰흙으로 평평한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뽀족한 갈대 펜으로 새긴 뒤 햇볕에 말려 완성한 고대의 문자)로 쓴 편지, 기원전 3세기 파피루스에 쓴 편지, 말린 동물 가죽에 쓴 편지 등 재료만큼이나 글쓴이도 화려합니다.


오웰 씨에게
...
이 우화(동물농장)는 매우 숙련된 솜씨로 쓰였고, 스토리도 독자의 흥미를 끌만합니다. 그리고 걸리버Gulliver 이후 이것을 이루어낸 작가는 거의 없지요. 반면 저희는 현재 정치 상황을 비판한 이 작품의 시각이 옳은 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
지금 이 교훈적 우화에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작가가 원하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를 향한 작가의 반대에 대해서도 얼마간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 관점에서 저는 대체로 트로츠키와를 선택하는데, 이 작품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웰 씨는 양쪽 어느 편에서도 강력한 공감을 얻지 못하고 표를 분산시키는 것 같습니다.
p.137-138

위 편지는 T. S. 앨리엇이 조지 오웰에게 <동물농장>의 출판을 거절하는 편지입니다. 칭찬도 인상적이지만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에서 상대를 얼마나 배려하고 존중하는지, 그리고 작품을 얼마나 꼼꼼히 읽고 결정한 것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거절의 정석이 아닐까요.

편지로 절 아주 놀라게 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동성애인이자 불륜 상대였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노골적인 편지도 담겨 있었는데 버지니아 울프를 작품으로만 봤지 사적인 건 전혀 몰랐던지라 편지 속 모습에 적잖케 당황했습니다.

또 사람이 본래 타인의 영향을 받는 상대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모차르트는 편지로만 보면 상당히 이중적이에요. 한 때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던 이에게 쓴 편지와 결혼해 안정적 가정을 꾸린 후 (여섯 아이를 낳은;) 그의 편지는 아주 극과 극이죠. 십대와 삼십대 정도로 느껴질만큼 (실제론 그렇게 텀이 길지 않지만) 문체가 아주 달라요.

모차르트가 사촌 마리아네에게

내 개인적 봉인을 네 엉덩이 위에 놓고, 네 손에 키스하고 내 궁둥이 총을 쏘아대며 즐길 것이고, 널 껴안고 엉덩이를 때릴 것이고, 널 깨끗이 앞뒤로 씻어낼 것이고... (그 뒤는 19금. 책을 통해 ^^;;)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당신과 다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마치 아이처럼 들뜹니다. 만약 사람들이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나는 거의 부끄러움을 느낄 거예요. ... 안녕, 나의 사랑. 나는 영원 히 영혼을 다 바쳐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모차르트입니다.



넬슨의 호사족 이름 '달리분가Dalibunga '로 서명한 이 편지는 그가 쓴 최고의 편지로 꼽힙니다. 저도 책 속의 편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편지였습니다.

부인,
...
그는 어떤 사람이 장애 자체보다는 장애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논점을 기본으로 하고 있소. "나는 이 질병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반 쯤 승리한 것이라고 하더군.
...
물로프Mhlope,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소 만약 그 동안 내가 보낸 편지들에 열정이 없다고 느꼈다면, 그 이유는 내가 한 여성에게 진 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오. 그녀는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경험이 부족한데도 훌륭히 가정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수감되어 있는 배우자의 어떤 요구와 바람도 처리해주었소. 그렇기에 나는 당신의 사랑과 애정의 대상이 되기 위해 더욱 겸손해진다오. 희망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조차 강력한 무기라는 점을 기억하시오. 내 삶의 모든 순간에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은 분명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날 것이오.

백만 번의 키스와 아주아주 많은 사랑을 보내며,
달리분가
p.32


이 편지를 통해 우린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당시의 한계적인 시각을 가졌지만, 그 기저에 희망이란 참 뜻이 깔려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왜 이 편지가 최고인지 꼽지 않았지만 개인적 사족을 달자면 이 편지가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그가 처한 현실, 나아갈 방향 등이 모두 담겨있는 진실되면서 희망찬 메시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자는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 <우편함 속 세계사>를 읽고 마음을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든 메시지든 글에 좀 더 진심을 담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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