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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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이자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모든 인류에게 바이오필리아, 다시 말해 ‘녹색갈증’이 있다고 주장했다.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최적의 생태적 공간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 이를 (단순한)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이라고 보기도 하고 일각에선 생존을 위한 조건 전제하에 유효하다 해석하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넓고 식물이 많고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겐 자연을 따르는 본성이 있을까? 그렇다면 왜 인류는 환경이 오염되고 지구가 온난화로 망가져 가는데 가만있을까. 나는 인류가 본능보다 생존을 더 중요시한다에 한 표를 던진다. 녹색이 중요한게 아니라 갈증이 핵심이고, 인류는 그 앞에 무엇이든 갖다 붙일 수 있다.

자본갈증, 지식갈증...




"정말 모르겠다는 혹은 이제 이무것도 알기 싫다는 지겨운 얼굴을 하고 윤조는 턱을 괴었다. 모래시계에 들어가 떨어지는 모래알을 한 알씩 그대로 맞고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한 느낌이 집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윤조가 그렇다면 나도 그래. 나는 윤조가 형성하는 뉘앙스를 사랑하니까. 여기서는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듯이 나는 속절없이 우울해졌다." (p.21)



바이오필리아를 직역하면 '생명애'이다. 소설 속 그녀의 우울은 사랑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닮게 되었지만 그녀에게 우울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극한의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이 곳에서 더이상 생존할 수 없어 다른 곳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 무엇을 고른다기보단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상태... 가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은 윤조와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즉 이 생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안전지대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인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피곤하다. 몸은 가만있는데 안전한 곳을 찾아, 위험을 탐지하기 위해 온 신경이 구만리 밖까지 나갔다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이 우울에 적응한다.


나쁜 습관을 버티는 것만큼 시간의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우울이다.(p.155) 우울에 꾸준함이 주는 힘이 더해지면 점점 더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 자의로 헤어나오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한데 때론 그 힘이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해 우릴 다치게 하기도 한다. 마치 재활용을 위해 페트병이 붙은 라벨을 떼려고 칼질을 하다 내 손을 베는 것처럼.


아직 자르지 않은 무를 두고서 깍둑썰기를 할지 나박썰기를 할지, 누가 칼을 뭘 것인지 말이 빠르게 오갔다. 엄마는 깍둑썰기를, 언니는 나박썰기를 주장했다. 깍둑썰기는 깍두기처럼 깍둑깍둑 썰어야 하는 것이었고, 나박썰기는 말 그대로 나박나박 써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같잖아. 아닌가, 그건 다른 건가.

p.82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도 친구와 같은 선택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깍둑썰기는 깍둑 깍둑 써는 것이고, 나박썰기는 나박 나박 썬다는 말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안될까. 그냥 그렇게 남들 살듯 따라 살다보면 눈에 띄지 않아 야생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 


사막에서 그늘을 만날 수 있듯 그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해가 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누구도 그늘의 존재를 믿어주지 않겠지만 잠깐의 쉼은 얻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면 안될까. 꼭 그늘이 어떻게 존재해야 했는지 모든 현상과 이론을 동원해 꼭 설명해야만 할까? 우울 혹은 행복을 그렇게 증명해야 할까? 아니라고? 아니라면서 왜 우린 인증샷에 목숨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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