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p.10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만약 당신이 현명함이나 통찰력같은 내공을 '자연스레' 얻었다면 그건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준 보답일 것이다. 세월의 풍파에 깎인 시각이 왜곡되면 확증편향에 빠지거나 꼰대가 되어 고집만 남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필자는 이 또한 '개인의 시각'정도로 해석하지 그 이상의 판단은 삼간다. 그래서 개인의 일기에 가까운 에세이인 <이토록 멋진 오십이라면>을 읽는데 거부감이나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이십대까진 '자연스러움'이 절로 얻어지는 쉬운 길인 줄 알았다. 고개가 숙여질 수 밖에 없는 고비들을 겪기 전까진 순리대로 산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줄 미처 몰랐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는 꽤 잘생긴 편이다'라는 표현보다 '그의 콧날은 이등변삼각형을 반으로 접어놓은 듯하다'라는 문장이, '그녀는 몹시 친절하다'는 표현보다 '그녀는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는 동안 조금씩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라는 문장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무엇을 명확하게 단언한 문장은 작가가 의도한 시선이나 감정을 따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주관적인 동시에 강압적이어서 상상력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묘사나 서술은 상황을 좀 더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마주 앉아서가 아니라 그의 주변을 돌며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p.67타인을 도마에 올리기 전에 스스로 도마에 올라야 한다. 우린 도마에 오르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 덕분에 좀 더 겸손할 수 있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재미있는 일부터 하는 사람인지 의미 있는 일을 먼저 하는지. 감정적인 편인지.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진 않은지... 우리 모두가 '나다움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나의 장르는 어디까지 완성되었을까. 내가 오십이 되면 어떻게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까."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말했다. 교육의 최대 목표는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라고. 촛불을 들든 끄든,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 아니겠는가. 머릿속이 아무리 깊어지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도 행동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p.188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이유, 관습, 시선, 시간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내겐 아직 어려운 난제들이다. 나의 행동을 돌이켜보면 아직 사회적 시선, 기대, 기준의 잣대에 곧 잘 휩쓸린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 나의 오십 또한 멋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