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분명 날 사랑했다. 그 사랑에 의심은 없었고 분명하고 확실했다."(p.67)그 당시엔 그러니까 삼십여년 전의 육아는 어느 집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우리 부모도 교육열이 강하고 생계에 대한 집착 또한 강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친구들 집도 비슷했다. 날고 기는 x세대, 오렌지족, 팬티에 비닐 바지만 걸쳐도 이해받을만큼(?) 개성이 강조되던 시대였지만 세대간 갈등, 혼란도 컸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의 부모는 어떻게 사랑해줘야하는지 알지 못했고 무조건 좋은 것을 강요하고 희생하는 것이 참사랑이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 받았으니 난 많이 줘야지...' 하지만 과한 사랑은 독이 된다. "7살쯤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는 선뜻 고가의 피아노를 사 줬다. 그때부터 엄마의 피아노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다."(p.86)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랬다. 7살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해 초등 저학년까진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피아노 선생님은 무성의해졌고 손가락을 똑바로하라는 똑같은 지적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정이 뚝 떨어졌다. 결국 난 집을 발칵 뒤집고서야 관 둘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관두겠다 말했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매를 맞았다. 그리고? 손가락 깁스를 하고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엄마의 바람대로 피아노를 전공했고, 엄마가 차려준 학원에서 원장이 되었다. 저자는 "그냥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는 "끝까지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고 했다. 요즘도 많은 부모들이 "한번 할 꺼면 제대로 배워야지. 피아노는 체르니 몇 까지는 쳐야지. 태권도 할꺼면 단은 따야지...."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그만둘 거면 시작도 하지 마라"는 엄마의 신념은 (스스로에겐) 나쁜건 아니지만 (타인에게 강요가 되면) 위험하다. 좋아하는 일을 만나면 끈기는 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어렸을 땐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거기엔 자연스레 여러번의 실패와 포기도 따라온다. 문제는 도전은 환영하지만 포기는 거부하는 태도이다. 내 가치관을 아이에게 강요하는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오늘도 반성모드..)[저 정신과 치료받고 있어요. 두 분 때문에. 자살하는거 보고 싶지 않으면 연락하지 마세요.](p.180)아빠의 폭력은 가족 모두가 영원한 마음의 장애를 입을만큼 크고 강했다. 엄마는 여기에 정신적 폭력을 더했다. 못난이라 부르며 동생이 아니라 네가 키가 작고 못생겨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사랑은 왜곡 그 자체였다. 먹는 것이 곧 우리 몸을 이루듯 우리가 먹는 사랑이 우리 마음, 정신의 형태를 완성시킨다. 엄마의 차별은 자녀에게 컴플렉스로, 화는 우울증으로 되물림되었다. 경험으로 미뤄볼 때, 한번 정립된 관계 사이클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감정을 참고 조절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폭발해본 경험이 많을수록 참는 일은 더 어렵다. 암에 걸리고, 십년만에 재발해서도 달라지지 않은걸 보면, 부모는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상처주는 사람을 가까이하라고 말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게 가족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평생 관계를 맺어온 사이이고 기저에 사랑이 깔려 있으니 완벽히 끊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지내야 했던 근 20년 세월 동안 받은 영향을 씻어내고 치유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치유될 수 있긴 할까 막막한 생각도 든다. 하. 성인이 되었으니 감정이 동요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치료에 전념해볼 수 밖에. 어떻게든 살아보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