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살아본다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다. 그 더운 나라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반드시 검은 히잡, 아바야를 두르고 다녀야 하는 모습은 (어떤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건지 몰라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 인권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무시되는지를 보여준다. 솔직히 여러모로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나라라서 책에 손이 갔다. '오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책을 읽었으나 책을 덮은 뒤에도 가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자는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사우디로 떠났다. 거주지는 외교 구역(Diplomats Quarter 줄여서 DQ)으로 대사관이 있어 경비가 삼엄하고 부유층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이긴 하지만 운동이 처녀로서의 명예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둥, 여자를 보는 노골적인 시선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 등을 보면 사우디는 사우디구나 싶었다. 스타벅스도 싱글 섹션과 패밀리 섹션으로 공간이 나뉜다. 테이블마다 커튼을 쳐두어 관련없는(?) 남녀가 부딪힐 일이 없게 한다는데 더 웃긴건 여기서 싱글은 남자 혼자 혹은 남자끼리 오는 일행을 말한다고. 즉 미혼 여성은 카페를 이용할 수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남아는 남자 선생님이, 여아는 여자 선생님이 가르친다.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하지?! 순간 중동이란 사실을 잊고 짜증이 확 올라왔다. (ㅎㅎ 내가 이런데 젊은 애들은 오죽 답답할까.) "난데없이 짐 캐리의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났습니다. 푸른 타일 벽 너머에는 여자의 운동을 금지하고 체육관에서조차 아바야를 강요하는 곳, 남녀가 함께 좁은 공간에서 스쿼시를 칠 수 없는 곳, 발목과 손목을 감추어야 하는 곳, 눈동자마저도 가려야 하는 세계인데 벽을 하나 사이에 둔 야외 풀장에선 팔다리를 드러내고 가슴골을 보이고 메이드가 쉴 새 없이 발라주는 선탠오일을 번들거리며 누워있는 자유가 허용되는 곳."p.183친정엄마처럼 아이를 13명 낳는게 꿈 혹은 행복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삶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단 걸 알고 선택한 것과 선택지 하나만 주어진 환경 속에 자란 것은 다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결과를 두고 사람을 평가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를 푸는 것이다. 주어진 삶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남이 재단해선 안된다. 간혹 현재 우리의 시대적 흐름에 비해 다소 늦은 시대를 사는 국가를 두고 미개한 것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면 된다. 앞서 사우디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말했다. 여행서라면 이 책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기록이란 점에서 성공한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출간된지 꽤 되었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먼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숙제를 풀 수 있게 도와줄 참고서같은 책이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