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녁 식사 값을 치르고 맥주 한 병을 들고 침실로 올라갔다. 모기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방에서 맥주를 차게 보관하려고 대얏물에 담가놓아야 했다. 그러고 나면 경이로운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혼자서 창턱에 걸터앉아 여름밤과 가벼운 무더위, 그리고 커다란 양초 모양의 흰색 밤나무꽃들이 유령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절반쯤은 의식하며 느꼈다."(p.44-45)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헤세가 남긴 작품들 중에서 나무에 대한 사랑을 엮어 만들었다. 헤세는 나무를 '고독한 사람'이라 불렀다. 그에게 나무는 벗이었다. 젊은 나무를 시기하고, 늙은 나무를 애도하고, 촘촘한 나이테를 드러낸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보다
더 거룩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p.9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목재는 좁다란 나이테를 가진 나무'(p.9)이다. 산 높은 곳, 위험이 계속되는 살기 힘든 험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일수록 강하고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범적이다.

나무의 90%는 이미 죽은 속살이자 나무의 생을 보여주는 문서고이기도 하다. '살아서 성장하는 백목질층에 둘러싸인 채 그렇게 나무는 우리처럼 성장하면서 동시에 죽어간다.'(p.162)


작품을 하나씩 읽을 땐 미처 몰랐던 작가의 인도주의적이고 서정적인 사고의 밑바닥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헤세가 살아있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썼다면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과 비슷한 (발췌아닌)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만큼 헤르만 헤세는 나무에 대한 애정이 컸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헤르만 헤세의 여러 작품에서 발췌한 글이지만 품위있는 문체에서 묘한 통일감이 느껴졌다. 마치 부모가 자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헤세에게 나무는 글을 쓰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뮤즈이자 퀘렌시아였다.

사람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않든 그 흔적을 통해 나의 뮤즈와 퀘렌시아가 드러난다. 당신은 무엇에서 희망과 위로를 얻는가? 나에게 뮤즈는 무엇이고 퀘렌시아는 어디일까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