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인류학자 #마가렛미드 에게 그녀가 생각하는 문명의 시작이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을 한 사람은 낚싯바늘이나 토기, 간석기 등을 예상했다. 하지만 마가렛 미드는 문명의 첫 번째 징조로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를 꼽았다.
"만약 당신이 동물의 왕국의 주민인데 다리가 부러졌다면, 당신은 죽어요.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고, 물을 마시러 강에 가거나 사냥을 할 수도 없어요. 당신은 그냥 다른 짐승들을 위한 고기일 뿐이에요. 동물은 부러진 다리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나타내요.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문명의 시작이에요."
한 사람이 죽어가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본 까닭은 "그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 되는 첫 단계라면 다음은 무엇일까. 아픈 사람을 돌보는 행위는 내가 다쳤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도 날 보살펴주고 살려주길 바라는 소망이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이타적인 동시에 이기적이다. 이 둘이 적절한 조화를 이뤘을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대부분은 이기적인 본성이 우세하다. 행위 너머에 있는 본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무의식중에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몸에 배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진화의 초판본일까? 완성형일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속 <의심을 찬양함>은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의 만남을 위해 카페에 온 유진의 이야기다. 유진은 만나길 고대한 남자 대신 그의 쌍둥이 동생을 만난다. 동생은 형에 대한 악담을 작심한 듯 마구 쏟아낸다. 동생이 꽤 설득력 있게 말하지만 유진은 동생이 의심스럽고 형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먼저 마주친 형과 잠깐이지만 이미 신뢰가 쌓였고 첫인상이 호감이었으니까. 초면에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을 신뢰하긴 어려우니까. 다른 사람의 말속에 숨어있는 의미, 의도를 파악하려고 뇌가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P 선배는 모든 일을 자기 방식대로 철저히 혼자서 하기를 원했다. 행선지에 대한 다른 의견을 내거나 방위에 대해 아는 척하거나 심지어 찌개를 끓일 때 옆에서 파를 썰어주는 것조차 싫어했다. 자신의 머릿속 지도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에 대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지했으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까다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곤 했다. 마치 옆집에 가기 위해서 먼저 '옆'과 '집'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옥스퍼드 어휘사전』과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는 식이었다.
<창작과 비평> 2020 봄호에 실린 은희경 작가의 최근작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의 주인공 승아는 인스타 속 사진이 가짜란 걸 알면서도 미국에 사는 친구를 무작정 찾아간다. 친구가 생각보다 잘 살지 못하는데서 안도감을 느끼고 굳이 말하지 않는 인스타 밖 현실을 통해 우월감도 맛본다. 먼 미국까지 가서 고작 얻은 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라니.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도 유토피아, 현실도피를 꿈꾸지 않는가. 작품은 승아가 그랬듯, 나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행복을 빌게 만든다.
작가는 인물들을 가감 없이 파헤치는데 주저함이 없다. 작가가 나누어놓은 조각을 내 마음대로 새로 만들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미 파헤쳐져 있어 죄책감 없이 마음대로 즐길 수 있기에 재미가 더한지도 모르겠다. 열 길 물 속보다 한 길 사람 속에 더 관심이 많다면 추천한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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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나요? 뜻하지 않은 낯선 한순간 자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틈, 거기에 갇혀 버린 듯한 공포스러운 전율을 느낄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