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회 없이 사랑했던, 카렌 블릭센을 만나다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평점 :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존재를 잊게 되는 작품이 있다. 카렌 블릭센의 <바베트의 만찬>이 그렇다. <바베트의 만찬>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묘사하지 않아도 문체가 섬세하고 풍부해 작품 세계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마법 같은 힘을 느낄 수 있는 명작이다.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몰랐다. 작가의 이름을. 부제를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놓칠 뻔했다.
《후회 없이 사랑했던, 카렌 블릭센을 만나다》의 저자는 <바베트의 만찬>,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 '카렌 블릭센'을 만나기 위해 케냐, 덴마크로 떠났다. 그 먼 길을 한 사람을 위해 가다니. 덕분에 몰랐던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삶은 열정적이었다. 카렌이 맨 처음 아프리카로 올 때, 그녀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커피 농장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녀는 커피 농장에서 원주민과 함께 어울려 17년을 살면서 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 노력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농장이 기울어 가는 동안, 카렌은 '원주민들이 침묵하며 견디는 모습을 보며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숙명 같은 시간 속에서 고구마 몇 뿌리와 옥수수 알들이 빠져나간 빈 옥수수들 모두 말라비틀어져도 신에게 불평하거나 아프리카 땅에 대해서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태도를 통해 카렌 또한 최악의 순간을 불평하지 않고 침묵하는 법을 배웠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농장을 맡았을 때부터 부실했던 농장의 경영상태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카렌은 농장을 매각한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였지만 그녀는 침묵 속에서 바베트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연거푸 이어지는 힘든 고비에도 불구하고 카렌은 침묵 덕분이었는지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다 갔다. 그녀가 뿌린 씨앗은 (=팔고 남은 땅은 모두 바티칸에 기증) 오늘날 카렌 지역에 수십 개의 수도원과 수녀원 등 신학교가 되어 나무 숲 속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해리포터 호그와트나 디즈니 랜드를 간 아이들이 이런 느낌일까? 소설 속 세계를 사진으로 마주할 줄이야. 구리 쟁반에 두 팔 벌려 반기는 것 같은 꽃꽂이며 짙은 가구 색이 주는 안정감, 따뜻함.. 모든 게 상상하던 대로다. 그녀는 이 집에서 <바베트의 만찬> 을 집필했을까? 바베트처럼 요리를 좋아했을까? 바베트는 카렌 자신의 이야기였을까? 자신의 이상향을 담은걸까?... 천국에서 그녀를 꼭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