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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룬샷은 작고 황당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비웃고 절대 성공할리 없다 생각한 아이디어가 여러 번의 고비 끝에 혁신을 일으켜 "룬샷"이 된다. 이 고비는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하고,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다른 예술가가 바턴을 이어받아 성공시키기도 하고, '모세의 함정'에 빠져 끝끝내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몰락하기도 한다.

대형 제약회사들은 종양에 대한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하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그냥 지나쳤다(p.112). 대형 영화제작사들은 메트로섹슈얼한 영국인 스파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아이디어를 흘려보냈다. 그들은 '루크 스타킬러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도 놓쳤다.
최초의 콜레스테롤약은 엔도 아키라가 처음 효소의 억제제를 발견했지만 완성은 대형 제약회사 머크의 연구원들이었다. 머크는 "사상충증 약을 개발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에 무료로 기증하기도 했지만 1993년 이후 10년간 머크는 중요한 신약 발견의 획기적 돌파구를 번번이 놓쳤다." (p.106)
폴라로이드의 회장 랜드와 그의 경영진은 디지털이라는 신기술에 숨어있는 전략형 룬샷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제품형) 룬샷에만 의지해 대부분의 고객을 잃고 말았다.(p.216)

"독창성이란 바람 앞 등불과 같다. 또 최초의 순간에 독창성은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우리 영화의 초기 모델을 '못생긴 아기'라 부른다."
- 픽사 탄생의 주역 에드윈 캣멀
2011년 캣멀은 영화 사상 처음으로 3D 이미지를 사용했다. 수업 과제로 만든 이미지를 들고 디즈니에 갔지만 디즈니는 시큰둥했다. 손으로 그린 그림에 대한 애착이 몹시 강했던 디즈니는 이 시기 여러 혁신적 룬샷을 제 발로 걷어찼다. 그 결과, 1994년 <라이언 킹>이 개봉 후 '디즈니'는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2010년까지 박스오피스 1위로 문을 연 작품이 단 한 편도 없었다.
반대로 캣멀은 알렉스 슈어를 만나 스타워즈 그래픽을 맡으며 '이전 40년의 영화제작 과정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5년 동안 줄줄이 만들어냈다.' CGI의 토대를 만든 그들이 만든 회사가 바로 PIXAR였다.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서로의 시너지로 룬샷을 날린 그들이 그 뒤로 승승장구한 이야기는 말해 입 아프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십여 년 전, 3D가 대중화되면서 MS 오피스,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그램에도 3D 툴이 생겼고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한 번은 그리고 누군간 바꿔야 했기에 여러 차례 얘기해봤지만 대기업, 금융권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라 알려진 직장은 씨알도 안 먹혔다. 여러 차례 포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TF에 자주 합류했던 경험 덕분에 총대를 멜 수 있었고 난 기존의 양식을 버리고 3D 양식을 모두가 쓸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만들었다. 당시엔 너무 과감하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컸지만 (쉽게 만든 덕분인지) 기업에도 내게도 좋은 발판이 되어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에 기업은 (여러 사람의 관계와 생계가 얽혀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초기의 제품, 기획, 설계, 아이디어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것만 고집하고 외부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끝내는 '모세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모세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수가 왜 나빴는지 곱씹는데 그치지 말고 '그 수의 이면에 깔린 의사 결정 과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나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울 거란 의견을 수렴해 쉽게 만든 게 득이 되었다. 변화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끈기로 매일 룬샷을 날리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더 큰 한 방의 룬샷을 기대하는 이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