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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 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고티에는 시장을 "도덕으로부터 해방된 영역"으로 규정했다. 그는 "완전경쟁이라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시장의 상호작용에서는 도덕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예나 지금이나 '탐욕은 이기심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고 도덕적 죄악으로부터 사면되었으며, 아이스크림 취향처럼 일종의 동기로 이해'되고 있다. 기분 나쁘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오랫동안 경제학자들과 입법자들은 인간은 이기적이며 도덕에 무관심하다는 가정 하에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이들이 정의 내린 인간은 의사결정 시 먼 미래는 고려하지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한마디로 '무지'한 사람을 샘플 삼아 정책을 만들고 시장을 작동시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은 역효과가 나고 시장은 저해되었다.
마키아벨리는 "배고픔과 가난이 부지런한 인간을 만들며, 법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했다.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마주한 노숙자들은 배고픔과 가난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법이 있어도 나쁜 사람들은 나쁜 짓을 했고 법도, 그들도 서로 무뎌져 가고 있었다. 노숙자들을 움직이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범죄자들이 법을 두려워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도덕경제학》이 말하는 '인센티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도덕경제학》의 저자 새뮤얼 보울스가 지난 20년 동안 테스트한 수십 건의 행동 실험은 거의 모든 집단에서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덕경제moral economy'라는 단어에서 모순이 느껴지지만 그는 경제 분야에서도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굴러가는 작동 원리의 히든카드로 인간의 도덕이라니 "인간이 경제적 이익 앞에서 과연 도덕적 선택을 할까?" 강한 의심이 들지만 저자는 이미 부제를 통해 힌트를 주고 있었다.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사실 우리는 이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수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p.296) 경제적 인센티브가 부여되었단 건 사람들이 물질적 이기심을 갖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사람들을 더 움츠려들게 만든다. 물질적 이기심에 대한 호소가 불쾌한 소식 효과를 가져와 도덕 감정을 훼손시키고 이것이 도덕적 거리두기 효과를 불러온다.(p.84)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어린이집 여섯 곳에서 일과 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자녀를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벌금제도는 어린이집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각한 부모의 수가 이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12주 뒤, 벌금제도를 없앴지만 이미 늘어난 지각 부모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벌금이란 인센티브가 "지각을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사고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시간을 구매하게 만든 것이다. 위 어린이집 사례처럼 인센티브 제공이 체험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몰아냄 효과', 반대로 인센티브가 개인의 체험가치를 증가시키는 경우를 '끌어들임 효과'라고 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조언은 책 말미에 나온다.)
인센티브가 사회적 선호¹를 몰아내게 되는 세 가지 이유(불쾌한 소식 효과, 도덕적 거리두기 효과, 통제 기피 효과)는, 인센티브가 사회규범을 지키고 동료 시민들에게 관대하게 행동하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가 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아리스토텔레스적 입법자에게 제공해 준다.
"현실을 관찰하거나 실험 데이터를 보면, 대부분의 인구 집단에서 이기적 개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도덕적 동기와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일반적이라는 점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브라질 어부들의 경우 공공재 실험에서 협력적으로 행동한 사람일수록 실제 해안에서 작업할 때 훨씬 더 친환경적인 덫과 그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자가 농촌 주민 집단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선 벌금이 부과되자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끌어들임 효과와 몰아냄 효과는 한 끗 차이지만 다행인건 시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게임(=실험)에서 더 상대를 관대하게 대하고 공정성을 더 고려 해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법이 최악의 결과를 대비해 설계되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착취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종의 보험이 되어 주고 있는 덕분일 수도 있지만 효과는 있다.
물론 과유불급이다. 보상 없이 행동 자체로부터 만족을 얻고 있을 때 인센티브가 도입되면 행동을 '과잉 정당화'할 수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경우, 어른이 손을 뻗어 닿지 않는 물건을 집는 것을 도와줬다고 장난감을 상으로 주면, 상을 받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이후 어른을 덜 도왔단 실험 결과도 있다. "보상이 주어지고 나면, 아이들은 예전에는 그 자체로 충분한 목적일 수 있었던 행동을 단지 더 가치 있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기 시작해 돕고자 하는 내재적 동기가 감소한다." (난 이 책을 읽고 육아고민을 덜었다. '집안일하고 용돈받기'를 할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안하기로.)
'사회적 선호'라는 이름 아래 묶인 동기가 얼마나 다양한지 생각해보면, 집단 내에서 사회적 행동을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무지한 사람을 전제로 정책이나 법을 만들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정책, 법이 세워질 시대가 도래했단 사실이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 과도기를 모쪼록 잘 통과하길 바라본다.
1. 사회적 선호 : 이타 주의나 호혜성, 타인을 돕는 데서 얻는 내적 즐거움, 불평등 기피, 윤리적 헌신을 비롯해 자신의 부나 물질적 보수를 극대화하는 수준 이상으로 타인을 돕는 여러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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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완독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게 만든 책.
어려운만큼 보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