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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실의 기적
쥘리앵 상드렐 지음, 유민정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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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이는 ... 엄마는 일 밖에 모른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러고는 오른발로 땅을 박차며 경사진 인도 위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달렸다."
《405호실의 기적》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아들 루이를 통해 엄마 델마가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루이는 각성 징후가 전혀 없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30일동안 지켜본 뒤, 차도가 없다면 산소호흡기를 떼겠다고 했다. 루이에게 남은 건 30일이 고작이다.

델마는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싸울 상대가 없다. 의식 없는 아이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차라리 몸이라도 분주히 움직일 수 있다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텐데 델마는 온종일 루이 생각, 그러니까 후회 뿐이다.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여주는게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경기장 좌석에 몇 시간 서 있는 게, 손뼉 좀 쳐주는 게, 격려 좀 해주는 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게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모두 다 내가 놓쳐버렸다. 가슴이 아팠다. 이전에 내가 어땠는지 알아갈수록 과거의 나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고독과 우울이 전부인 잔인한 현실로부터 나를 지켜줄 방패 같은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워킹맘'인 델마에게 '맘'이 무너졌으니 남은건 '워킹'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유일한 구명조끼가 되어주었던, 그녀를 지탱해 줄 유일한 존재였던 일도 허무하게 무너져버린다. 워킹, 맘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델마는 어디에 존재해야 할까.
델마는 루이의 방 청소 중 루이의 <나의 기적 노트>를 발견하고 루이의 꿈에 대신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루이의 꿈을 하나씩 이뤄갈 때마다 델마는 회피했던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우연이 인연으로 맺어준 에드가르를 통해 홀로서기를 배운다. '내려앉은 어둠이 아무리 짙더라도 우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길은 언제든 개척해나갈 수 있다.'
"이 꼬마의 에너지, 태양처럼 끌어당기는 매력은 나의 고립, 나의 고독과 가혹할 정도로 대조적이었다. 내 안 가장 깊숙한 곳에서 공허의 메아리가 울렸다. ... 이미 오래전부터, 루이의 부재 훨씬 이전부터 나는 나 자신의 삶에서 부재중이었다."
'기적'은 흔히 노력없이 굴러 들어오는 행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405호실의 기적》에서 말하는 기적은 노력의 결실에 가깝다. 가까스로 깨어난 루이의 질문에 델마는 무어라 답할지 무척 궁금하다.
"누구... 세요...?"
"물론 과거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에드가르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앞은 아름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