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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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과 결혼했다는 모토무라는 사랑을 거부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사랑하는 게 그녀에겐 벅찬 일이다. 애기장대의 잎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모토무라는 세포로 가득한 세상을 동경한다. 그런 그녀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후지마루의 용기는 신중하면서도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모토무라의 마음을 애기장대 세포만큼 사로잡지는 못했다.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 후지마루 요타와 식물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모토무라는 후지마루의 첫 느낌처럼 천양지차다. 접점이 없는 남녀의 통통 튀는 사랑 이야기일까? 공감대를 형성할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두 남녀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 없는 세계에서 모토무라는 행복할 수 있을까?


"겨우 5분이 지났을 뿐인 지금,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마치 아른거리는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잎사귀 안에 초롱초롱 펼쳐져 있는 세포의 우주. 후지마루가 지금까지 요리해온 채소와 고기, 생선 속에도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 (p.55)

 

연애 문제 중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vs.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이 좋다."라는 문제로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것이다. 나의 결론은 '비슷하든 다르든 사랑하는 마음을 따르면 비슷해서 지겨워도 극복할 수 있고, 달라서 충돌해도 극복할 수 있다.'였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만날수록 나와 다른 점이 보이고 부각될 수도 있다. 다른 점이 매력으로 와닿을 수도 싫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데 어울리다 보니 마음 맞는 부분이 생겨 함께 있는 게 즐거워지기도 한다.

 

남자는 조미료 통을 들고 여자는 약품 병을 만진다.

남자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고 여자는 현미경 앞에 앉는다.

남자는 젓가락을 들고 여자는 핀셋을 잡는다.

남자는 접시를 닦고 여자는 슬라이드글라스를 정리한다.

둘은 동시에 초록 잎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액체에 담근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린다.

 

 

소설을 읽을수록 아주 달라 보였던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줄 접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왜 '나'와 '당신'은 다른가에 대해 분석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성과 지성이 요구된다." 사랑은 물과 햇빛처럼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그리고 반대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후지마루는 사랑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모토무라는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이미 사랑 있는 세계에 속해 있었다. 이 사실을 그녀만 몰랐다. 서로가 열정을 기울이는 세계는 달라도 언제까지나 함께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순간 느낀 감정이 사랑이었다. 그의 음식을 먹고 마음에 가득 차오른 행복한 감정이 사랑이었다. 명절에 집에서 먹은 엄마 밥은 청바지를 꽉 끼게 만든 것만이 아니었다.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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