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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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가끔은 뭣 같이 굴러갈 때가 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악마 같은 어른들에게 희생되기도 한다.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 걸까? 아무리 발악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인간의 존재 의무에 대해 묻는다.


"올리버는 그저 하루 종일 서럽게 울고만 있다가, 비참하고 기나긴 밤이 찾아오면 어둠을 몰아내려는 듯 조그마한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린 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잠을 청했다. 그러다 이따금 퍼뜩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잠에서 깨어나, 마치 차디차고 딱딱한 벽이 주위의 암울함과 고독감을 막아주는 방파제라도 되는 양, 벽 쪽으로 더더욱 몸을 끌어당겼다."

 

 

 


주인공인 올리버는 구빈원에서 태어났단 이유로 이용당하고, 어리단 이유로 끊임없이 희생된다. 관을 팔아먹고사는 소어베리 부부는 올리버를 데려다 아이들 장례식 때마다 회장꾼(검은 천이나 삼베를 옷깃이나 모자에 달고 장례행렬 앞에 서는 사람)으로 세워 장사 수완을 올린다.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교활한 유대인 노인(페이긴)은 사람을 꿰뚫어볼 줄 아는 재주를 이용해 올리버를 시종일관 옭아맨다.

 

"이 교활한 유대인 노인이 올리버를 올가미에 얽어맨 셈이다. 맨 처음에 올리버를 고독하고 우울한 상태로 내버려 둠으로써, ...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간절함을 갖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페이긴은 서서히 올리버의 영혼에 암울한 독을 주입하면서 순순한 영혼을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

 

장물아비인 페이긴은 아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세뇌시키고 도둑질을 하게 만든다.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자기 쓸모에 따라 이용하는 모습이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엄마'와 아주 많이 닮았다. 엄마의 모성애와 노인의 혜안이 끔찍하게 악용될 수 있단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애석하게도 이야기 속 악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갖 범죄의 근원지였던 뒷골목이 배경인 이 소설의 특성상 올리버가 마주한 사람들 중 팔 할은 (또래들마저도) 범죄자들이었는데 온갖 유형(?)의 범죄와 범죄자들이 나온다.

 

 

 

 

 

악이 우글거리는 소굴에서 유일하게 올리버를 생각해준 낸시. 몸을 파는 여자였지만 그녀는 조금 남달랐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양심, 사랑이 발작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얼마나 고되게, 악착같이 살았는지 저자는 별다른 말이 없다. 그녀의 말을 통해 어림짐작해볼 뿐.

 

낸시는 마지막 남은 양심 덕분에 시궁창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내지만, 그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죽임당한다. 올리버를 지켜냈고, 양심은 지켰으니 옳은 생을 산 거라 해야 할까? 그녀까지 지켜낼 수 있는 선(善)은 없었던 걸까?

 

 

"소용없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애써본 줄 알아? 다 헛수고였어. 산 넘어 산이라고. 네가 여기에서 도망을 친다 해도 지금은 아니야."

"당신처럼 젊고 선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사랑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죠. ... 나처럼 관뚜껑 말고는 확실한 지붕도 없고, 병들고 아플 때 의지할 친구도 없는 여자들이 어떤 남자에게 타락한 마음을 내준 경우라면 어떻겠어요? 그 남자가 비참한 삶의 텅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말릴 수 있겠어요? 아가씨, 우리를 가엽게 생각해줘요. 가엾게도 우리에게는 여자로서의 감정 중 단 하나만이 남아서, 위안과 행복이 아니라 폭력과 고통의 원천이 되어버렸거든요."

 

 

 

 

 

 

올가미 같은 사랑도 사랑이라고 믿는 낸시를 그곳에서 빼내기 위해 계속 설득했던 여인은 그녀와 정반대의 삶을 산 곱디고운 아가씨 '로즈'였다. 그녀는 모든 이를 편견 없이 대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이름처럼 꽃같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성인이었다.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 같았던 그녀와 친구(?)들이 저지른 소매치기로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다가 쓰러진 올리버를 구제해 보살핀 브라운로씨가 없었다면 올리버는 뒷골목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브라운로씨는 소매치기를 당한 피해자였지만 올리버의 말을 믿어준 그리고 첫 자비를 베풀어준 사람이었다.

 

"정직하게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면 벽돌장이로 살아도 좋단다." 브라운로 씨가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사랑을 주는 이거 딱 한 사람만 일지라도 말이다. 올리버는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랑을 쟁취했다. 낸시는 소극적이었고 과거에 묶여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빚어낼 수 없다. 이것이 두 사람의 생을 갈라놓았다. 로즈의 손을 잡았다면 낸시의 삶도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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