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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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이 다른 것처럼 죽음 또한 모두 다르다. 심장, 뇌, 폐가 기능을 상실해 육체가 생명을 잃는 물리적인 문제는 잠시 잊자.

 

 

 

 

"주혁은 영화에서 본 화려하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 폭발 3초 전 해체된 시한폭탄이라든가 낭떠러지 직전에 멈춰 선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 다리 위 불타고 있는 기차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거뜬히 헤엄쳐 나오는 사람처럼 허황된 것들. 기적같은 순간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정교하고 오만한 거짓들.

 

기적은 없다.

남자의 아내는 사고로 죽을 것이다."

 

 

나는 내가 운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주혁에게 깊이 공감했다. 허황되게 운좋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분노의 질주>같은 쓰레기 영화는 예고편만봐도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다.

 

 

《밤의 행방》 속 주인공 주혁는 반의 도움으로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막아설 수도 밀어낼 수도 없다.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알려주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마당에 감사할게 뭐가 있겠나. 불똥이나 안 튀면 다행이겠는데 주혁은 그도 개의치 않는다. 소설은 작은 점으로 태어나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이윽고 도형이 되었지만 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붕괴된 이들을 조명하고 있다.

 

 

"다툼은 서로에게 매일 새로운 형태의 모멸감을 더해주었다. 다툼의 끝에는 화해나 이해처럼 다정한 단어가 아니라 명징한 몰이해와 구차한 변명만 남았다."

 

"누나가 성장함에 따라 옷장과 방과 학교생활을 차례로 포기해나가는 식이었다. 누나가 성인이 되자 부모는 그녀의 이력과 인생 전체를 포기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가정의 붕괴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사회로부터 찍힌 낙인이 한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누군가의 말 몇 마디가 타인의 삶에 어떻게 비수가 되는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라는 오명이 얼마나 끔직한 고통을 주는지 느낄 수 있다. 간결한 문체가 아니었다면 읽기 힘들었을 이야기들이었다.

 

 

공통점은 인재(人災)다. 빌미를 제공했든 아니든, 직접적이든 선의였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든 단초를 제공했고 망자의 죽음에 얽혀있다. 가깝게 지내던 누군가를 잃는다는건 그래서 상처가 되고 아픈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준 상처가 내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흘리는 눈물이 어디서 온 건지 분명히 알고 난 다음에 눈물을 흘려 보내야 한다. 내게 되돌아 온 상처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파만 하면 있다. 인재로 생명을 잃는 건 정말이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 나라에는 허공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우주만상의 모든 생명이 쇳대를 가지고 척도를 초월한 삼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아아 님이여 죽음을 방향이라고 하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 한용운 《님의 침묵》 , <가지 마셔요> 부분 중에서

 

 

 

 

+

반 :

"귀신한테도 당분이 필요한 모양이지. 주혁은 창장에서 믹스커피 봉지를 꺼내 뜯었다. 원하는 대로 단 걸 먹이면 주절거리는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커피 알갱이를 대충 골라내고, 흰 가루에서 프림 알갱이를 골라내려다 귀찮아져 그대로 화병에 부었다. 어쨌거나 설탕이니까. 가루를 붓자마자 나뭇가지가 꽥꽥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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