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우린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이 말은 곧 '쉽게 사람에게 값을 매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과거를 통해 그 사람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다시말해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셈을 하고, 쉽게 가치를 논한다.

스스로 내 삶의 가치를 셈 해보는 것은 잘 살기위한 인간의 기본 욕구의 발현이자 발전을 위한 좋은 것이다. 나에겐 좋은 일이지만, 내 계산법으로 타인의 삶을 계산하고 재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좀 더 솔직하게 풀어놓자면 나쁘고 위험하지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여자.
자기애조차도 갖을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생.


《별이 총총》의 중심엔 지하루라는 한 여자가 있다. 지하루의 엄마, 딸, 할머니, 키워준 이웃 아줌마, 첫 남자, 또 다른 남자들... 그녀를 스쳐지나간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누구도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도 유일한 매력(?)인 가슴 덕분에 남자들에겐 어필이 되지만 내게 통할리 없다. 자기 보호에 관한 의지도 없는지 동정심을 유발할 말이나 생각, 자신의 마음도 일절 드러내지 않아 책을 덮은 뒤에도 그녀(들)가 이해 되지 않았다.

 

'자기를 버린 엄마가 밉지 않았을까? 온갖 착한 척은 혼자 다 하며 자기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걸 알고 낙태시킨 이웃 아줌마를 어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지? 자기가 낳은 애에게 미련이 1도 없을 수 있구나....'

 

유독 핏줄 타령이 강한 나라에 태어나 모성을 교육받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다는 건 독서보단 도전에 가까웠다.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이길 거부한 엄마의 딸답게 그녀 역시 아이를 낳긴 하지만 엄마도 아내도 되지 않는다. 딸이지만 딸 아닌 삶을 선택한 과거로 추측컨대 남들처럼 혹은 사회적인 틀에 맞춰 사는게 오히려 그녀에겐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가치있는 삶을 살길 끝까지 바랐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술집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라며 아이가 누려야할 것들을 단 하나로 누려보지 못했지만 노래로 삶을 바꾼 에디트 피아프처럼. 왜냐면 나의 기준으로 볼 때 그녀의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답장 늦어서 미안해. 방금 아사히카와에서 돌아온 참이야. 그쪽에서 받아온 쌀로 밥을 지으려고 했는데 전기밥솥이 없어서 프라이팬을 꺼냈어.'

밥공기를 꺼내 가볍게 담았다. 한 입 넣었다. 프라이팬으로 밥을 지을 수 있구나, 라는 감탄 뒤에 입 안 가득 그리운 단맛이 퍼졌다. 이상할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도 그리움도 애정도 생겨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제는 그가 살았던 날들을 긍정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서 태어난 아이라고, 프라이팬으로 지은 밥이 가르쳐주었다. "


프라이팬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다. 밥솥이 없으면 어떤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법. 도구는 중요하지 않단걸 깨닫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녀에게 박혀있는 보석이 내게도 반짝이기 시작한다.


"스토브를 등지고 누운 여자는 금세 잠든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트 중간에 절벽처럼 솟은 허벅지, 그 절단면을 상상했다. 생각나는 것은 여자의 몸에서 잘려나간, 혹은 찢겨나간 다리였다. 잃어버린 다리에도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남겨진 다리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현실적인 것으로 감지하고 이해했다. 부정기적으로 때가 되면 살갗에서 튀어나오는 유리 파편 하나하나가 이 여자가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

지금까지 이런 스포는 없었다. 프라이팬에 밥을 짓는 것. 이것은 스포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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