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 - 힘겨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들로 북적대는 병원은 언제 보아도 낯설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혹은 내 상상 그 이상으로 아픈가? 수시로,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나?'
답을 알면서도 이런 질문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이 계속 떠오른다.

 


 

 

 


"걱정이 밀려올 때면 나는 걱정을 구름이라고 상상한다. 걱정의 구름이 쓰윽 밀려와 나의 생각을 가린다. 예전에는 이 구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 암에 걸린 것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미세한 몸의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걱정을 해댔다. 공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운명을 내 손 아귀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 소용없었다."
(p.137)

 

북적대던 환자들로 가득하던 병원을 나오면 아픈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처럼 삼 년째, 적게는 주 1일에서 주 7일까지, 여러 병원, 여러 과를 다니는 또래를 만나볼 수 없다. 이 말은 곧, 나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단 뜻이기도 하다. 외롭겠다고? 절대 아니다. 통증 앞에 고립감은 사치다.

 

유별나게 유난 떠는 몸이 지긋지긋하고, 천국이고 지옥이고 뭐고 그냥 다 끝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지칠 때도 있지만, (내 몸의) 통증이 잦아들거나 (치료에 차도가 있거나 아이 재활에) 희소식이 들린다거나,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가 내게 전해지면 놀랍게도 힘이 난

다. 나의 경우엔 그렇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의 저자도 비슷하다. 자식을 앞세워야 했던 부모님의 삶을 이해해가고, 같은 병을 앓은 지인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게 작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세상엔 아직 투병이 현재진행형인 사람들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세상은 산산조각 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산산조각 난 마음을 열심히 이어붙이고 있을 것이다.

 

"한여름이었는데 나는 커튼으로 가린 어두침침한 방에 누워 내 운명을 한탄했다. 아이들을 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열린 창으로 이웃집 사람들이 차를 몰고 휴가를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고 있었다. 이 평범한 일상의 소음이 더없이 듣기 괴로웠다. ...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삶의 고비를 견뎌내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삶의 고비에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조언을 받아들일지는 자기 몫이다. 어쨌든 그리고 현재까지 그녀는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하니까. 치료를 마쳤고, 암을 극복했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고, 마음의 고비를 잘 넘겼고, 책을 출간했으니까 말이다.

 

 

 

 


나 또한 지금이 내 인생 그래프의 움푹 팬 굴곡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울하거나 슬프진 않다. 순간의 행복이 평균값(번역하면 삶의 질? 기쁘고 행복한 순간? 정도 될까?)을 열심히 올려주고 있다. 그래프가 조금씩 위를 향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즐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며칠 전 일기장에 '마음의 살이 차오르고 있다.'라고 적었다. 저자는 마음을 유리조각에 비유했다. 마음을 넓게 펼쳐져 있는 판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마음 판에는 한번 깨지면 회복이 불가능한 유리로 된 부분도 있고, 재생 가능한 살성을 가진 부분도 있겠다. 무엇보다 기쁜 건 이 성질의 차이는 타고나는 게 아니란 것이다. 이 마음 판을 채우고, 키우고, 이어 붙이고, 가꾸는 건 내 몫이다. 지겨-업게 외쳤던 "내 마음이야! 냅둬~!"란 말이 새삼 무겁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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