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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칼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림원 / 2018년 12월
평점 :
난 어쩌자고 이 책을 읽겠다 한걸까. 고통스러울걸 뻔히 알았으면서.
울고불고 마음이 요동칠게 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 읽어내야겠다!
생각했다.

작은 통통배 한 척이 성난 바다 위를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하고 있다. 파도가 얼마나 거친지 작은 배가 가엽고 안쓰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삶과 바다는 공통점이 많다. 늘 그대로인 것같지만 시시각각 변하고 한시도 같은 순간은 없다. 삶도 바다도 얼마나 제 멋대로인지, 아이고 어른이고 절대 봐주지 않는다.
"나는 여섯 살이에요. ... 나는 슬퍼할 자격이 없어요, 그렇죠? ...
나는 죽음을 마주 하기엔 너무 어리대요. 그래서 엄마 곁에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엄마 뒤에서 걸을 수 없대요. ....
햇빛 아래 나가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르노에게 엄마와의 이별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투병하는 동안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그건 어른들의 것이었고, '어린 아이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제발 내 엄마의 일부를 나에게 남겨줘요!" (P.28)
삶의 초석을 다지긴커녕 모으기도 전인 이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를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세상? 공기? 우주?,, '전부'를 빼앗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빠가 빨리 정신차리길 바랐지만 그를 탓할 순 없다. 따지고 보면, 어른이라고 상처가 빨리 낫는 것도, 덜 아픈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늙을 수록 상처는 더디 낫고 회복도 오래 걸리지 않는가.
겉으로 보이는 아이의 일상은 흔들림이 없다.
학교를 가고, 축구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축제에 참가하고... 브루노는 또래들처럼, 예전처럼 지냈지만 깨진 마음이 다시 붙기엔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다. 집이 세 곳이 되면서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는 소외감을 느낀다. 제게 주어진 기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부서져가는 아빠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눈물흘리며 엄마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나는 엄마의 무릎 위에서 잠이 들었죠. 주위에는 숲에서 우리집 구석진 곳까지 스며들어온 나뭇잎과 풀잎 냄새가 가득했어요. 여름날의 냄새. 엄마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요. 대체 언제까지 돌아가신 채로 있을 거예요?" (P.40)
사랑이 절실한 이 아이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스쳐지나갈 작은 온기조차 허투로 넘기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엄마의 온기 없이 자란, 보듬어지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를 다듬어가는지 ... 곁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어 책을 읽는게 힘이 들었다. 게다가 자전적 이야기라니. 이런 고통을 겪었다니. 수 많는 아이들이 이 고통을 겪고 있다니. 마음이 아렸다.
(아름다운 글에 비해 표지, 편집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