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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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소유가 된 뒤로 새끼고양이는 빨간 목걸이를 차고 방울 소리를 내며 곧잘 우리 별채의 뜰에 나타났다."

 

화자(남편) 부부는 어느 한 노부부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한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이미 주인이 있는 고양이지만 여자는 이 고양이를 내치지 못하고 자기 공간을 내어준다. 고양이에게 조용히 제 공간을 내어준 건 집주인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에 고양이와 아이는 들이지 않는다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을만큼 조용히 살고 싶었던 할머니지만 제 발로 찾아오는 고양이는 어쩌지 못했다.

 


"거기서 창을 열고 겨울 새벽에 데려온 손님을 맞아들이면 집안의 기운이 단숨이 되살아났다. 설날에 그것은 첫 '예자禮者'가 되었다. 새해를 축하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자를 예자라고 한다. 드물게도 이 예자는 창문으로 들어왔고 게다가 한 마디의 축사도 늘어 놓지 않았지만 단정히 두 손을 모으는 인사만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하나 둘 주인공 부부를 떠났다. 집주인 노부부와 고양이와의 사별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그 뒤로도 이야기는 한참동안 계속된다. 지루하리만치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변 묘사가 팔할인 이 소설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걸까. 책을 덮고 "뭐지?뭐지?"하는 생각이 끝없이 들려 생각을 갈무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 들고 어느 문 틈새로 들어가고 하는 움직임에 원래부터 작은 흐름을 만들어내는 듯한 성질이 부여된 게 아닐까. 하루 하루의 움직임이 거듭되면서 일정한 흐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너무나 작은 흐름도, 흘러가기 때문에 비로소 어딘가에서 큰 강으로 이어진다..."

 

하루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없이 많은 생명이 세상을 떠난다. 그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어찌보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난 왜 죽음을 특별하고 심오하다 생각했을까?" 만만하게(?) 본 책에 예상치 못한 허를 찔렸다.

 

 

 

 

 

"저 느티나무 아래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 저 느티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소나무 밑동에 소중한 구슬 같은 것이 잠들어 있다. 창문에서 그런 먼 풍경이 보인다면 느린 망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어떻게든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밟고 다니는 이 땅 밑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묻혀 있을까. 멀리 내다보기에, 망각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에 아직 난 너무 어린가 보다.


+
"고결한 인간은 타인을 밀쳐내면서까지 치고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당시 시대라는 격류는 앞으로 점점 더 고결한 자부터 먼저 쳐내는 방식으로 그 흐름이 빨라질 것 같다고 전망되었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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