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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평점 :
오리아나 팔라치의 운명은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아버지는 레지스탕스(파시스트와 나치에 맞서는 저항운동)였다. 그것도 무려 리더였으니 이 정도면 역사의식이 DNA에 박힌 채 태어났다 해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확고한 역사의식과 냉철한 사고를 품은 그녀는 폭탄 그 자체였고 기폭제는 세상에 나가라는 어머니의 외침(=절규, 한탄)이었다.
"한 명은 뚱뚱했고 한 명은 홀쭉했다. ... 뚱뚱한 남자는 천한 세탁부처럼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 한편 홀쭉한 남자는 너무도 평범한 얼굴이었다. ... 코밑에 반창고 같은 수염을 단 그는 아주 친절해 보였다."
고모에 의해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오해하는 위기(?)도 겪지만, 부모 덕분에 세상에 일찍 눈을 뜨게 된다. 학교를 다닐 때도 유별났고, 학업도 빨리 마쳐 열여섯 살에 추천서 한 장 없이 신문사를 찾아가 기자 자리를 꿰찼다.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기사 한 편을 써 냈고 다음날 신문에 실렸다.) 그렇게 그녀는 총과 폭탄 대신 펜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당대의 굵직한, (오프 더 레코드로 말하면 위험하고 까칠하고 비호감인) 유명 정치인, 독재자 등을 인터뷰하고 면모를 가감 없이 말하는 걸로 유명하다. 나 또한 그녀를 그렇게 만났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상대를 낱낱이 파헤치는 촌철살인 인터뷰어. 용감하다! 멋지다! 사진을 뚫고 나오는 카리스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진짜 그녀를 만난 기분이 든다.
나는 모두에게 물었다. "겁나세요?"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다. "네. 많이요."
그러면 나는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두렵지 않아 용기 있게 행동했던 게 아니다. 전쟁터가 두렵고 글쓰기가 싫었지만 "해야 할 일", 소명을 위해 살았다.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 인생을 소비하지 않았다.
고통과 인내 끝에 꽃을 피운 그녀를 보며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책 표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침묵하고 있는 내게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묻는 것 같다. 가슴이 아프도록 찔리다. 일단은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라는 1차원적 갈망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