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평균의 종말》이란 제목을 통해 느껴지듯 저자는 "평균"의 허상을 들춰내고, 우리의 믿음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지적하고 바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평균"을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을 비교해야 할 경우, 예를 들어 각자 다른 그룹에 속한 2명의 개인이 아닌 러시아와 미국의 조종사, 한국과 중국의 성형외과 의사 간 실력을 비교하는 경우에는 유용하지만, 개개인과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평균"을 사용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엔  "평균이 어떻게 틀릴 수가 있지?"하는 생각에 살짝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평균을 갖고 이야기하는 뉴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평균 없이 뭘로 비교를 하지?"하는 궁금증까지 저자는 차근차근 풀어내며 나를 진정시켰다.

 

 

 

케틀러는 우리 모두는 '보편적 원형의 결함'이 있는 모사작이라고 주장했고, 원형을 '평균적 인간'이라고 명명했다.

케틀러는 이 '평균적 인간'의 정체를 밝히고자 평균 키, 평균 체중, 평균 얼굴빛, 평균 결혼 연령, 평균 사망 연령은 물론 연간 평균 출산, 평균 빈곤 인구, 연간 평균 범죄 발생 건수, 평균 범죄 유형, 평균 교육 수준, 심지어 연간 평균 자살률까지도 계산했고, 지금도 쓰이는 케틀러 지수(BMI, 체질량지수)를 고안해 평균적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남녀 평균 BMI를 산출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여성성의 상징물 '노르마 Norma'는 아브람 벨스키가 로버트 L. 디킨슨과 합작해 15,000명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신체 치수와 자료를 바탕으로 빚어진 조각이다. 당시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디킨슨 역시 대규모로 자료를 수집해 얻어낸 평균치가 중요한 사실을 결정짓는 요소라 믿었고, 이 신념이 '노르마'라는 상징물을 만들어냈다.

케틀러처럼 노르마 조각이 만들어진 당시 사람들도 "평균적 인간"을 완벽한 인간으로 간주했다. 유명 인류학자, 예술가, 교사는 물론 목사까지 나서 '노르마'를 칭송했고, 노르마 닮은 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여성은 귀감으로 떠받들어지고, 일상 또한 바람직(?)하고 정상이라고 평가받았다.

물론 지금은 평균적인 사람을 완벽한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한 집단, 유형의 전형적 표본으로 간주하는 건 여전하다. '변호사들'은 이렇더라, '노숙자들'은 이렇더라, 'A형 성격'은 이렇더라 등으로 단순화해 규정지으려는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개개인성을 인정받고,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다. 고유한 본성에 따라,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지만 현실은 등급, 직급에 얽매여 있다.

 

 

《평균의 종말》은 평균주의자들이 만든 주입식 교육 시스템과 관리자 개념(공장 시스템)이 어떻게 사람의 개개인성을 말살시켜왔는지를 통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큰 줄은 알았지만, 막상 책으로 확인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적잖게 쌓여 있었다. 특히 아이들 문제는.. 현실의 벽이... 하.

우리에게 익숙한  '마시멜로 연구' 또한 '자제력'이 높은 아이가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학업 성취도가 더 높았다는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실험의 본 목적은 "상황 맥락별 전략을 통해 상황의 압박에 대한 제어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말해 맥락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마시멜로를 이미 먹은 아이 혹은 마시멜로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와 노숙자 쉼터에서 몇일 굶은 아이를 데려와 비교 실험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뻔하지 않나. 자제력 또한 맥락(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십 년간 대물림된 사고가 쉽게 깨지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개개인성'이 주목을 받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아직도 머리가 지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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