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가족여행을 떠나는 차에 올라타기 직전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 남편 곁에서 꼼짝없이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 ...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끊고 어머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행은 한껏 들뜬 경적 소리로 출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을 잡은 다음 어머니는 천천히 무대로 걸어나갔다. -67쪽
가난한 유학생이 외국인의 입주 가정부가 되어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떤 여름 오후.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72쪽
세계는 고통을 실어나른다. 고통은 관계의 고독이고 고독은 개인됨의 고통이었다. -77쪽
에피소드에는 속편이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회성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쳐가는 수많은 버스들과 비슷하다. 한순간 내 앞에 머무르지만 나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작가는 최대한 에피소드를 배제한다.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플롯의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세계, 그 세계를 구현하지 않는 에피소드는 여지없이 퇴출된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모두에게 자기 인생의 작가라는 권능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의 형태로 등장하여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버스 가운데 어떤 것이 일회성 우연이며 어떤 것이 내 인생의 플롯으로 가는 노선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할까.-103쪽
사라진 것은 완결된 것이며 완결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260쪽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2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