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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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괴물과 같았다. 매순간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괴물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모든 순간은 마지막 순간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우리는 삶과 죽음이 서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됐다. 거리에서. 다시 말하자면 가두에서. 그러니까 폭죽처럼 지랄탄이 터져나던 가두에서. 백골단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가던 퇴계로 어딘가 좁은 골목길에서. 백병원 바리케이드 너머로 보이던 그 새벽의 불길한 어둠에서. 우리는 그 누구라도 그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죽음보다도 더 우연적인 것처럼 보였다.-121쪽

그해 6월, 나를 향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밀려들던 우울(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우울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가 느끼던 거대한 우울이었던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그 우울은 너무나 컸다)로부터 나를 구해냈다. 나를 구한 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123-4쪽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믿자!-374쪽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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