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 나는 그런 식의 말들을 믿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 '중립'이란 말은 백인, 기독교, 자본주의, 서양중심주의로 무장한 국제 주류언론들이 떠받드는 신줏단지였다. 그이들은 그 단지 밑에 숨어 자본을 증식해 왔을 뿐이다. 그런 국제 주류언론들 입장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어김없이 '중립성' 논란이 일었고 그 당사자는 몰매를 맞았다.
내가 죽기 살기로 남예멘에 기어들어갔던 건 그런 식의 '중립' 따위나 지키겠다는 의지가 아니었다. 이미 북예멘에는 기자 수백 명이 진쳤고, 그이들 손발로 북예멘 쪽 기사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따라서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사실을 이해하려면 '남예멘발' 기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점이다. 그래서 나는 남예멘을 택했다. -172-173쪽
전선과 뉴스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였다. 그런 뉴스거리는 외신들이 달려들 만큼 묵직한 주제였지만, 동시에 정부군이 동맹군 내분으로 선전해댈 기막힌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이중성' 때문에 나는 한동안 크게 망설였다.
혁명이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카렌민족해방군에게는 치명적인 뉴스였고 그 결과 동맹군이 겪게 될 또다른 어려움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서푼짜리 직업을 따를 것인가, 혁명사를 따를 것인가?'
결국, 나는 그 혁명 속의 '불신감'도 또 동맹군 속의 '희생'도 모두 자가 검열로 묻어버렸다.
고백하건대, 내가 지난 15년 동안 버마전선을 취재해 왔던 건 내 정치적 의지를 따른 행위였고, 나는 처음부터 '적'과 '동지'를 구분한 채 버마전선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시민을 대량 학살하고 정치를 탈취한 군사독재는 그게 한국에서든 버마에서든 내게 적이었다. 나는 그 적을 무너뜨리는 시민으로서 소임이 전선기자라는 내 직업과 무관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해서, 내 기사가 군인독재자들을 이롭게 한다는 건 버마 시민들에 대한 배반이라 믿었다. 따라서 나는 자가검열을 했다. -3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