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적 ㅣ K-포엣 시리즈 47
정현우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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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쏟아진 감정을 정리하는 일 같다는 문장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었다. 검은기적은 바로 그런 시집이다. 울음을 터뜨리기보다, 울음이 지나간 자리를 천천히 쓸어 담는 책.
흩어진 마음을 차분한 언어로 다시 세우는 기록에 가깝다.

이 시집의 저자 정현우는 격정 대신 절제를 택한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든다. “흩어진 마을일수록 언어는 더 차분해진다”는 문장처럼,
무너진 자리에서 시는 낮고 단단해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말을 다시 배우는 기분.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그 감각을 여러 번 느꼈다.

특히 마음에 남은 작품

베개
“이상하게도 엄마가 죽었는데도
나는 잠이 잘 왔다.
베개에 기대어 잠들었다.
따뜻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이 짧은 문장은 상실 이후의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슬픔 한가운데에서도 몸은 잠을 자고, 베개는 따뜻하다.
그래서 미안해진다. 애도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시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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