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돌
육월식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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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도서지원

검은 배경에 빛나는 은색실을 뚫고 나와 걸음을 옮기려는 선인장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어디로 어떤 여정을 떠나려는 걸까요?

📖
연과 나, 그리고 몇몇은
같은 물을 먹고 한 화분에서 잔다.
모두들 이런 우리를 가족이라고 했다.

연은 나에게 먹는 법, 자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도 연에게 배웠다.
- 본문 중에서 -

어느 날, 인은 태어났어요. 그리고 연을 보았지요. 인은 연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어요. 같은 물을 먹고 한 화분에서 자며 살아가는 이들을 사람들은 가족이라 불렀어요.
베란다 구석 그늘진 곳에서 살던 그들에게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길을 만났지요.
길에서 바다에서 온 새와 바다 이야기를 들은 인은 바다로 가기를 꿈꿔요.

📖
"바다에서 온 새가 그랬어.
내 고향에선 누군가 어떤 곳을
완전히 떠날 때 등뒤로 검은 돌을 던진대."
- 본문 중에서 -

검은 돌을 던지지 못하고 연과의 실타래를 끊고 길을 나선 인은 연과 맞닿은 '인연'의 끈을 붙잡고 끊임없이 연을 떠올려요. 그리고 그 안에서 길과의 '인연'도 위태로워 지지요.
길은 인 곁에서 화도 내고 타이르기도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결국 길은 길을 떠나고 길이 떠나며 남긴 숨을 안고 인은 살아가요.

.
"한 번은 누군가의 딸이었을 모든 여성에게."
라는 헌사가 오래도록 머릿 속을 맴돕니다.

인과 연, 길과 숨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바다에서 온 새의 이야기.
연에게서 물리적으로 멀어졌지만 정신적으로 전혀 독립하지 못한 인과 그런 인이 숨을 마주하며 알게 되는 연과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지점들을 보며 그 안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엄마와 너무 어린 나이에 이별해야 했기에 엄마를 떠올리면 애틋한 마음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엄마의 모든 것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엄마와의 예기치 못한 이른 이별이 저의 추억에 행복필터를 씌웠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원망스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오랜 고민끝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말했지만 거절당해야만 했을 때,
저의 의견과 상관없이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강요받아야 했던 날들,
두 어깨 가득 짐을 짊어지고 원치않아도 나의 의무라 강요받은 일들을 해야만 했을 때.
좌절하며 눈물지으면서도 그럼에도 엄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고 결국엔 제 뜻을 꺾어야 했던 날들. 엄마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내 아이에겐 절대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은연중에 두 아이에게 저의 의견을 피력하며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저의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하곤 합니다.
엄마와 닮은 제 모습이 싫은 것만은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느껴질 때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기에 아이를 키우면 키울 수록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엄마의 딸이였던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되었습니다. 많은 순간에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가 된 나를 떠올립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많지만 그런 과정 안에서 '검은 돌'을 마주하며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가 유독 그립고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
연은 내게 좋은 것, 나쁜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 모든 것을 주었다.
그는 할 수 있는일을 했다.
그게 엄마였다.

내 머릿속은 온동 '엄마'로 시작되는 문장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 중 나쁜 것만 기억했다.
이런 나를 견디지 못해 늘 괴로워했다.
이게 나였다.

비로서 내 손 안의 검은 돌과 마주선다.
'괜찮아.'
'다 괜찮아.'

툭.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손이 가볍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 본문 중에서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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