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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책을 덮으며 10여년 전, 스마트폰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난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언니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는 나에게도 얼른 바꾸라고 권했다. 너무 편하고 좋다고,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그런데 난 바꾸지 않고 최대한 버텼다. 무슨 오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 흐름에 올라타고 싶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다 신혼여행지에서 핸드폰이 고장나 입국하면서 바꾸러 갔다가 매장직원의 권유에 못이겨 느즈막이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잘 쓰고 있지만 종종 생각하게 된다.
'편안함이 삶의 전부일까?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윤택한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AI를 쓰면 얼마나 편하지 아냐고 챗 GPT는 뭐든 다 해준다는 말을 자주 듣는 요즘이다. 그런 틈바구니 안에서 난 아직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필요한게 있으면 아직도 이런저런 검색을 해서 찾아보거나 책을 뒤적이곤 한다. 괜한 시간 낭비라고 AI는 한번에 해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모든 걸 다 해주면 난 뭘 하지?
생각하거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니...그게 진정한 해결일까?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만이 능사일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과정이 필요없어 진다면 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라는 존재가 가치가 있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며 보내던 어느 날 <멸종 위기의 사고>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 나가야하는지 조금은 답을 엿본듯 하다. 영화에서 보던 기계나 컴퓨터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필요할까 싶은 순간들이 곧 우리 눈 앞에 펼쳐질 것 같아 작가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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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분야에서 최근에 나온 연구물들을 읽다보면 새로 부각되는 중요한 현상을 분석하기보다는 반복적이고 획일적 사고에서 쓴 경향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초반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아도 독창적인 방식 선택 여부에서는 뚜렷이 드러난다. 요건대, 연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신적 생기를 잃어 가며, 일상의 풍경 속에서 생기가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p. 229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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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우리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극도로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답변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영구적인 자기만족과 태만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전체적으로 퍼지도록 만드는 데 매우 튼튼한 기반이 된다. 곧, 정보를 얻기 위해 링크를 클릭하는 행위조차 필요하지 않게 될 테니, 책을 참조하거나 정보를 출처까지 거슬러 올라가 비교하고 종합하여 더 나은 이해를 도모하는 작업은 당연히 무용해질테다. (p.238 - 239)
- 본문 중에서 -
깊이 있는 탐구와 사고의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사라진 사회는 우리 모두를 어리석음의 구렁텅이로 집어넣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리석음이 넓게 깔린 시대'라는 소제목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너무나 공감을 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 아이들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자문해본다.
AI가 만연에 깔린 이 사회를 바라봐야 할 비판적인 시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며 작가가 말하는 7가지의 요구안과 행동안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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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인간 고유의 사고 창조 능력 발현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둘,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고 급격한 변화를 강요하는 기술 발전을 거부한다.
셋, 문화의 원천인 지적 창의적 지겅ㅂ의 소멸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보전을 위한 협동이 필요하다.
넷, 사회는 상호의존 속에 유지되지만, 기술 시스템과의 관계는 고립과 폭력을 낳는다.
다섯, 기술 발전의 판단은 이해관계에 얽매인 전문가가 아니라 실제 경험자가 맡아야 한다.
여섯, 원칙을 어긴회사와 기관에 대한 공적 지원은 규탄받아야 한다.
일곱, 작가 예술가는 보상과 타협하지 않고 생성형 AI를 쓰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 뒷표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