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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 요한일서 강해 4-5장 ㅣ 마틴 로이드존스의 요한일서 강해 2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지금껏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돌아가실만큼 사랑하셨다고만 알고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내게는 불가능 한 일이었뿐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네가,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사 화목제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 구원받을 자격도 없으며, 사랑받을만한 것이 전혀 없는 너를, 그리고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네안에 그리고 내 안에 있을 때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불가능한 일을 하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이 내 안에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구원을 확신하게 된다
구원의 확신은....아마도 구원받기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 예를 들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안에 있는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다.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안에, 하나님이 자신안에 계심으로 드러나는 사랑을 통해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기도 하다.
아!...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보내사 그의 설교를 통해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책제목 : 하나님의 사랑
마틴 로이드 존스 요한일서 강해 4-5장 ISBN 978-89-08229-2 (04230)
하나님으로부터 남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올바른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들이 선하고 도적적이고 매우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삶을 산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전반적 위치에 대한 궁극적 시금석은 사랑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쉽게 성을 내서는 안되며, 악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되며, 다른 이들의 불행을 기뻐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것을 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최선의 상황이 일어나기를 바라야 한다. 그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정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며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싫어하는 자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시금석이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라고 하셨다. 그것은 어렵지 않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자연적인 사랑이 그런 식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을 판별하는 온전한 시금석은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화나게 하는 사람에게 고린도전서13장이 진심임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여러분이 잘못을 범한 형제를 보면 여러분에게 해가 된다고 느끼는 대신 참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돕고자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라. 그것이 그를 심각하게 해치며 큰 위해를 가하고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누리는 엄청난 기쁨을 그에게서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사랑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때로 여러분은 자신의 문제로 부터 떼어 놓아야 하며 그것이 당신에게서 위해를 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가 그러하셨듯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붙들어주며 또한 그것으로 인해 그를 사랑해야 한다.
자연인은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선언하며 선포하는 셈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사랑
첫번째 계명은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며 두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첫번째 계명대로 행하기 전에는 결코 두번째 계명을 지킬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시작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하시리라는 사실에 있다"라고 한다. 그분이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리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무슨 권리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것을 믿노라고 말하는가? ....
그는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믿노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에게는 그것을 실증할 것이 전혀 없다. 그는 그것을 믿으며 다른 이들이 그렇게 말하므로 그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최종적으로 이해되고 인식될 수 있다.
요한1서 4: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요한1서 4: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너희가 사랑에 관한 그 무엇을 알고자 한다면 이런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놀라우신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떠나서는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듣는다. 왜인가?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친절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그분의 은혜를 받을만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인가? ...
죄의 결과로 우리 안에는 생명이 없다.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
즉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분을 통해 우리가 살수 있으며 그분없이는 우리가 죽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들은 사랑을 받음직하거나 사랑하고 있는 것과 거리가 멀며 본성상 하나님을 미워했다. ...우리가 본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의 사랑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이 그들의 요청에 응답하신다고 하는 것은 통속적인 신학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들은 본성상 그리고 죄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원수이다.....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미워하며, 그분을 사랑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분께 적대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죄악의 찌꺼기와 구렁텅이속에 있으며 진노밖에 받을 것이 없으며 그들을 위해 옹호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 신약성경의 모든 주장인즉, 자신에 관하 단순한 진리가 바로 그러함을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알수가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측정하는 첫번째 단계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어떤 분이 여기 계시다...
하나님은 그 영광가운데 자신의 독생자를 하늘로부터 그 영원한 축복과 절대적 완전함과 더불어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우리는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그 무엇인가를 상상해볼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했다. 그분이 자신의 독생자에게 이 세상에 들어가도록 요청하셨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 확신을 갖지 못하면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없다. ...그분이 오신 세상이란 이런 곳이다. 이기적이며 욕심 사납고 자기 중심적인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위해 분주하다....그분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누추함과 가난에 수반되는 걸핍에 대해 알고 계셨다. 또한 삼십년 동안 보통 사람들과 함께 섞여 목수로서의 평범한 삶을 사셨다. 영광의 주요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서 오신 영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죄와 대면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는가? 추한 죄악을 바라보며 그것과 직접 대면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는가? 그 모든 수치와 추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란 바로 그러하다. 어떻게 그분이 자신의 모든 정결함과 거룩함 가운데 하늘로부터 오사 삼십년 동안 여러분과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사실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것을 참고 견디실 수 있었는가? ....그분은 대적해 일어난 반대세력을 보라. 서로를 바라보고 수근거리며 간교한 물음을 던지고, 그분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분을 아래로 끌어당기려는 교활한 움직임을 보라. 그 음모를 보라.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서 발생한 배신을 보라. 그들이 그 거룩하신 이마에 씌운 가시관을 보라. 그분이 오신 세상이 그러했다. ...
더욱이 하나님은 그분을 보내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그분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죄를 그분에게 담당시키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이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그것은 여러분의 죄와 나의 죄를 대신해 드리신 제물이었다.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분은 그것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면전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분이 세상에 오실 뿐 아니라 화목제와 화목제물이 되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사 여러분과 나를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신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사 죽게하시고 잔인한 수치와 고뇌 및 십자가의 고난에 처하게 하시며, 죄를 알지도 못하며 무흠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 죄를 삼으신 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그리하여 그 희생이 충분했고 율법이 만족되었으며, 모든 것이 완전해졌음을 선포하셨다. 거듭 말하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런 식으로 죽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죄를 사하실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기전까지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여러분은 속죄의 교리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
그분이 우리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다. 달리 말해 그분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다.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그분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는 그분의 성품과 권능을 받았다, 그분이 우리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그분안에 살고 그분은 우리안에 계신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살아간다. 거기서 우리는 다시 높은 데로 일어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사랑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다. 용서, 사함, 평강, 회복, 새 생명등이다.
끝으로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죄와 허물로 죽은, 그분을 반역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그분의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인간을 용납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시고,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며, 그분으로 하여금 잔인한 죽음과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게 하사 속죄제물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무엇이 그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시도록 했는가?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그것을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오직 그분 자신의 자기발생적 사랑일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의 위대하신 사랑의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 이외의 것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며, 그 모든 일을 이루셨다. .....
나는 나 자신의 완악함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보고 그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잃은 바 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어떻게 우리안에 어떤 증오심이 남아 있을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놀라운 사랑을 주시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일 이외의 일을 행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이것들을 보고 믿으면서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무가치하고 부끄럽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수 있겠으며,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빚지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와 찬양 그리고 감격의 표현이 되게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해야 할 일
만일 여러분이 믿는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 여러분에게는 다른 어떤 입장을 취할 권리가 전혀 없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으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그렇게 할수 있는가?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이라는 진리를 상기시켜야 한다. 달리 말해 이것은 절차이다. 내가 성나고 불안하며 당황해하며 또한 어쩌면 적대감마저 느낄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전투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 가운데 나타나는 어려움이란 항상 다른 사람을 볼 뿐, 자기 자신을 보지 않는데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완벽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면 - 하나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다면-내가 무엇을 발견하겠는가?
대체로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즉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 다른 사람이 다소 변화될 수 만 있다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것이며 모든것이 잘되고 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은 "잠시만 멈추고 너희 자신을 보고 너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정확히 상기시키라"고 했다.
자기 중심성, 자기확신, 자기기만, 방종, 자기를 기쁘게함, 자기추구, 자기연민, 자기과민, 자기방어,자기만족, 자의식, 자기의, 자기영광추구.. 자기를 기만하는 사람은 얼마나 쉽게 자신을 변호하며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모습에 대해서는 얼마나 쉽게 정죄하는가!....
하나님이 내가 묘사한 것과 같은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것은 놀라운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요한은 말했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복음의 조명안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볼때,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치거나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티끌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너무도 낮아져 있으므로 아무도 우리를 더 낮은 곳으로 보낼수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 자신을 보고 난 후에 그렇게 한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 여러분이 다른 사람위에 설 때, 그들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티끌 가운데 엎드리고 있을때, 필히 다른 사람을 올려다보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상황과 관점이 곧 달라진다....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본다. 우리는 그들을 보지 않는다. 이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영혼으로 객관적으로 보게 하며, 행위를 통해 혹은 그들이 우리에게 행하고 있는 바를 통해서만 보지 않는다....그 사람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죄의 희생자요 사탄의 희생자이다. 복음은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의 행동과 그 이면에 있는 그 사람 자신을 구분할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셨을때 우리에게 하신 일이 바로 그러하다. 하나님은 땅위에 있는 우리를 하늘로부터 내려다보셨으며 우리의 비참한 행위들을 보셨다. 어떻게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실수 있었는가? 물론 그 대답인즉 하나님이 죄인과 죄를 구분하신다는 것이다.하나님은 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신과 영혼을 사랑하신다.하나님은 그처럼 중요한 구분선을 그으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그분은 우리를 애석하게 생각하신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행한 바를 보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분은 "내가 구원하기 원하는 영혼이 있다"고 하신다. 그분은 그러한 구분선을 그으시며,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고무될 때, 우리 역시 그렇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 사랑은 우리에게 공격적일 수 있는 자들을 보고 그들을 애석하게 여길수 있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듯이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것이 그들안에 있는 사탄과 죄임을 압니다. 주님을 나타내사 그들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소서"라고 한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일만달란트 빚진자....'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러분은 자신을 보았는가? 그러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본다.여러분의 자기 의는 모두 추방되고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을 그와 같이 볼 때, 다른 사람들 역시 소위 죄라고 불리는 무서운 세력의 희생자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자유로워지도록 돕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심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다음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앞에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확신 할 수 있는가?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면 그것은 세상이 으례 하는일이며 우리 모두의 본성이 그러하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나를 핍박하고 악의적으로 대해 온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나를 해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 어떤 사람을 돕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그분에 내 속에 계심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분이 내안에 계시지 않다면 내가 결코 그렇게 할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본성상 이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형제를 사랑한다면 나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확신하는 셈이다....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이 내안에 계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결코 할 수 없다. ...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가 되게 하시고 또 그 모든 일을 이루게 하신 궁극적 목적은 우리로 형제를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5:43 ¶ 그들이 말한바,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마태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바로 그 일을 하지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전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시듯이 우리도 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