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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이야기 - 열망의 유토피아가 온다
주요섭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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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이야기] 책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교육까지 주입되어 왔던 편협하게 고정되어 있던 현대사와 국제정치에 대한 의식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고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을 전환시켜 주었던 이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였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아주 큰 인식적 충격과 전환을 안겨주었던 [전환시대의 논리]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의식을 깨는 것이라면 [전환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전환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패망하면서 세상은 자본주의의 논리 그 중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사회정의도 민주주의도 함몰되어 버린 현실에서 과연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체제는 과연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의구심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작가는 전환을 “의식의 전환, 생활의 전환, 체제의 전환”이며 “주체의 전환, 가치의 전환, 운동의 전환”이라고 하며,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문명의 전환”이라고 한다. 작가의 “전환”에 대한 규정과 자본주의 이후의 가치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만을 봤을 때, 책의 전반적 흐름은 매우 의식적이고 정치적일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게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작가의 경륜을 엿볼 수 있는 해박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참 평온하고 공정하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력을 고양하는 한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경제 영역의 자유를 인간과 사회 전체로 일반화하려는 체제라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부의 대가로 지구생태계와 인간성과 공동체를 치명적으로 파괴하였고, 급기야 자본의 재생산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아니다. 체제 전환의 때가 되었다. 사회적 위기, 생태적 위기, 그리고 경제 시스템 그 자체의 위기를 인정하고 또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생활양식의 전환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기약할 수 없다. 거꾸로 ‘또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체제 전환’이다.”이라 주장에 더욱 강한 기대감을 갖기도 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초라하다. ‘민주화’라는 말이 극우파 인터넷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고,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문을 닫았으니 민주주의 그 자체는 몰라도 ‘민주화’와 ‘민주화 세력’의 위기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70~80년대 세대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신화가 사라졌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민주주의가 절실하지는 않다. 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만도 아니다. 나와 우리의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을 담기에 투표용지의 크기는 너무 작다. 찬성/반대 둘뿐인 선택지는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정녕 ‘새 정치’가 절실하다.”는 주장에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고, “진보는 국가 교육에 편향되어 있으며, 우익은 시장 교육만이 경쟁력 강화의 해법이라고 강변한다. 국가 교육과 시장 교육을 넘어 (지역)공동체 교육으로 새롭게 창조해 내야 한다.”는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도 공감한다.

그러나 작가의 전환론에 대한 주장에 한참 기대나 흥분을 가져보고자 하면 해박한 종교적 사례와 개벽 이야기가 오버랩 되면서 왠지 종교 서적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과, 작가가 정말 주장하고픈 얘기가 무엇인지도 헷갈렸다. 새로운 전환 시대에서 문명의 척도는 ‘삶·생명, 평화, 박애’라는 가치가 종교적 사회 운동에서 태동하였고, 종교적 가치와 끈이 잘 연결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탈종교, 비종교라고 작가가 지속적으로 주장하지만 작가의 결론은 결국 종교로 귀결되고 있는 순환론적 오류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동학 계열의 민족종교의 논리가 스스로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과 너무나 유사하며,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교리에 해밝은 것도 너무나 닮았고, 이러한 세계적 종교는 하나로 통하고 연결된다는 주장도 흡사하다. 물론 동학의 교리와 정신을 더 높게 사고, 현대에서도 이러한 동학의 정신을 분명 계승해야 하는 것은 맞다. 동학의 숭고한 정신과 교리를 이어받아 생명, 평화, 박애라는 가치를 널리 퍼뜨리고 동학운동에서와 같이 포접 활동과 유사한 사회 협동조합도 분명 긍정적인 요소가 아주 많고 사회 변혁의 한 주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도 한살림조합원의 집이고, 각종 반찬과 과일을 한살림에서 조달하고 있다.

의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감하지만 이러한 의식의 전환은 결국 체제의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 비약이고 이분법적이고 너무 단계론적 접근인 것인가? 사회 전반적으로 협동조합 열풍이 불지도 않고 있으며, 귀농귀촌 인구가 이농 인구를 넘어서고, 무엇보다 모든 계층을 망라하여 일어나는 힐링 신드롬이 있다고 체제 전환의 신호탄이라고 보기에는 작가의 너무 때 이른 상황 분석이 아닌가 한다. 겨울동안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 마치 너무 이른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고 작가는 조급하게 아니 너무나 많은 갈증과 열망으로 진짜 봄 기운을 받은 소생(蘇生)을 보고 싶어서 눈에 그렇게 아지랑이가 보이는 것은 아닌지 한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의 차원에서 보면 자본주의 위기가 시작되었다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자본의 권력이 너무나 강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화폐의 지배는 맹위를 떨치고 있고,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산업문명을 제패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나,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후의 가치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는 작가의 순수한 주장처럼 정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아니면 대천재가 나타나 새로운 전환 시대의 논리가 필요하다고 작가처럼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초라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초라하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그렇게 만들고 조작하고 조롱하는 것이 초라하지만, 긴 우주의 시간으로 봤을 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도 무작정 낙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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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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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서평)

 

  자식들이 커는 것을 보면 한편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생로병사의 이치에서 인간인 우리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한낱 미물에 불과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모두 제 각각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음에도 젊게 살고 싶고, 젊게 보이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구나 품위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하는 것도 인간의 기본 욕망일 것이다.

 

작가는 백세 시대에 어르신들의 사랑과 성 그리고 놀이에 대한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지만, 어떻게 사랑하며 잘 놀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혼란이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황혼 이혼 증가, 돈 달라고 부모 학대하는 자식들, 노노간병, 간병살인, 노인들의 외로움을 파고드는 상술, 고독사, 효도제안서 등의 사건들을 소개하며 작가 나름의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첫째, 혼자 노는 ‘고독생’에서 벗어나 교류하라. 인간은 경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소속감, 타인의 존경 등을 통해서 더 발전할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 가족 관계를 리모델링하라. 황혼 이혼할 생각이 없다면 미리미리 부부 관계를 점검하고 리모델링해야 하며, 또한 자녀와의 관계가 노년기 행복의 큰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짝사랑’이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책임감으로 ‘자녀 중심적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하며, 상호 독립성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자녀와도 협상하고 합의하는 기술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

셋째, 80세까지 일하려면 ‘경력 모자이크’를 만들어라. 100세 시대의 인생은 이전보다 천천히, 유연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주변의 환경도 즐기며 달려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오래 일하고 싶다면 평생 학습과 계발을 통해 스스로를 쇄신하고 활력을 불어넣고, 휴식기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30대 초반에 일 년 동안 일을 쉬면서 여행을 다니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다양한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험을 넓히며, 40대가 되면 또 일 년 동안 학습에 매진하여 두 번째 전문분야를 개발하며, 50대 초반까지 두 번째 전문 능력에 쏟는 에너지를 늘리며 50대 중반에 다시 사회 체험을 위해 일 년 동안 여행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며, 50대 후반이나 60대에는 지금까지 쌓은 전문 능력을 바탕으로 小기업가로 변신하여 7,80대까지도 계속 사회활동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넷째, 혼자 사는 기술을 익히되 ‘이웃’과 ‘마을’에 투자하라. 2030년이 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1인가구가 될 것이기 때문에, 100세 시대란 너나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마음가짐과 준비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일상을 홀로 감당하는 신체적, 감정적 능력도 키워야 한다. 가족보다는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오늘 같이 밥을 먹는 친구와 이웃들이 더 소중하며,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잡담을 나누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눠 먹고, 아픈 사람에게 돌아가며 죽을 끓여주는 ‘마을’을 가꿔야 한다.

다섯째, ‘자기성찰’을 통해서 능동적인 삶을 기획하라. 100세 시대의 인생은 길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내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는 건 무슨 일인가?’, ‘무엇이 최선인가?’에 대한 더 깊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자기 성찰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르지 말고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가도록 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타인과 다른 독특한 삶을 창조하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이나니.(존 던)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큰 딸이 나와 감성이나 취향이 비슷해져 이선희의 ‘인연’을 같이 부르고, 드라마를 보고 같이 울곤 한다. 노래 가사나 드라마 상황에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는 것을 느끼며, 남자들의 갱년기에 대한 작가의 말에도 아주 격하게 동의한다. ‘경쟁’과 ‘생존’의 전쟁터를 거쳐 오는 동안 자신의 약점이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자, 나이 들수록 점점 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가 갱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자로부터 배울 건 배워라는 것이다. 갱년기 여자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정보와 나눔, 보살핌,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여자들만의 깊은 연대감을 남자들도 배워야 한다. 남자들이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만 있어도 갱년기로 인한 피차의 고통과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조그만 구멍 하나가 몇 십 년간 쌓아온 결혼이라는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작가의 진심어린 조언은 가슴에 와 닿지만 작가도 결국 여자라서 남자들의 고독과 고민을 진정 알 수 있을까 하는 자조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孔子가 나이 마흔이면 ‘불혹(不惑), 쉰이면 ’지천명(知天命), 예순이면 ‘이순(耳順)’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무엇을 당해도 늘 망설이기 일쑤이고 ‘유혹’에는 더 약해질 것 같고, 50이 넘어도 100세 시대라 오래 살아서 그런지 천명을 알 것 같지도 않고, 60이 넘어도 천지만물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것 같지가 않다. 아마 옛 성인이 나이 들수록 이러한 것이 안 되니 이를 경계하고 주의하라는 의미라고 스스로 각색하며, 딸들과는 달리 부부 사이에 점점 대화와 소통이 어려워짐을 느끼고 있는 차에 작가의 적절한 조언이 살갑게 다가온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경제적 준비’도 중요하지만 ‘좋은 부부관계’를 갖기 위한 준비도 해야 하는데, 특히 부부간의 ‘도를 넘는’ 공격성과 자기중심성이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그만 일에도 큰 싸움으로 번지는 대화 방식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부터 대화를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야기하면서 서로 시선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보기를 권유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화가 났나? 혹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나? 걱정스러운가? 우울한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심리적 제안은 참으로 실질적이고 유효한 것 같다.’아, 내가 지금 화내고 있구나‘라고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고 있으면,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위협하는 말투를 줄이고, ’당신이 그런 태도를 보이니까 속상하다‘라고 침착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간에도, 부부간에도 ’기술‘은 필요하다는 조언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초등학생 둘째 딸이 자기 30세에 아빠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아빠가 건강하게 늙어서 너희들을 곁에서 지켜주고, 삶의 바른 길에 대해서 조언도 해주고, 또 그 때까지도 일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조금 막연하게 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노후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고, 작가가 조언하는 제2의 삶에 대해서 설계는 고사하고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는 쳇바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가 주장하는 남자들의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 그럴 수도 없지만 나중에 은퇴해서도 쉽게 그럴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딸을 위하여 뇌성마비 외손자를 죽이고 본인은 자살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는 어른신들이 과도한 책임감에 자기 파괴적인 빗나간 선택을 하는 원인을 작가가 진단하길 ‘소통’과 ‘관계’ 부족이라고 보고,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데 바로 ‘유연함’과 ‘사회성’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라.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지나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라고 한다. 책임감으로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남자들이여!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묻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하시라고.

 

그리고 작가는 영국 노인들 삶에서 공동체적 삶이 건강과 장수에 좋다는 ‘로제타 효과’를 언급하면서 ‘관계’와 ‘참여’의 소중함을 알고 가꿔나가는 생활양식이 지배적인 그런 마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서유럽 국가들은 오랜 복지국가의 역사를 통해서 아무리 복지가 발달된 나라라 할지라도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는 깨달았고,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동체적 삶이 국가의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 복지가 미흡한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다소 멀지만 종국적으로는 작가가 희망적으로 제안하는 공동체적 삶이 경쟁만 강요하고 천민자본주의적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고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품어 본다.

 

  작가가 결론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은퇴를 자기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계기로 삼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계기로 삼는, 그런 삶을 권하고 있다. 영국의 노인들이야말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창조적 영국’이라는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뿌리’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노인으로부터 젊은이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치와 자원, 지혜는 오늘날의 영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며, ‘노인이 없는 영국’을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라고 한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건 도서관 한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의 의미를 점차 노인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다시 한 번 깊게 되새겨보아야 하는 말인 것 같다.

 

어느 보험회사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는 설문지에 답하니 예상수명이 나왔다. 정확도가 거의 90%가 넘는다고 하여 성실히 답하니 예상 수명이 81.5세라고 나왔다. 남자의 평균 수명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오래 사는 수치인데도, 다시 작정하고 아니 희망 사안으로 설문조사에 다시 답하니 83.5세로 나왔다. 일주일에 5번 이상 운동, 한번에 30분 이상 운동, 1년에 한 번 정기건강검진, 술도 1주일에 한 번, 등으로 답한 결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니 혼자라도 오래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겠지만 어떻게 오래 사는가, 어떻게 품위있게 나이들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누구나 품위있는 삶을 원한다. 그리고 품위있게 늙어서 죽기를 원한다. 작가는 언론을 통하여 최근 알려진 각종 노인 문제에 대하여 작가의 고민이 녹아들어 있는 해결책을 나름 설득력있게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나 광범위한 문제에 대하여 각각의 깊고 전문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부제에 붙여진 “열심히 산 당신이 100세 시대에 버려야 할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를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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