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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인문학 -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
안성민 지음 / 책읽는귀족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생계형 인문학 (안성민, 책읽는귀족, 20170401)
인문학과 관련한 책들이 봇물을 이루어 출판되고 있으며, 상업적인 측면에서 인문학이란 제목만 들어가도 세상의 먹고사는 직업과는 상관없이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히는 세상이다.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인문학’인데 왜 ‘생계형’일까 생각했는데, 아마 인문학을 생계로서 먹고 살아야 할 만큼 삶의 기본적인 탐구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고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세상은 온통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혁명인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러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인간의 단순하거나 복잡한 육체적 노동력뿐만 아니라 복잡한 정신적 노동력까지도 기계가 대신할 것이라는 미래는 장밋빛 전망만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여기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폴 고갱의 유화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아마 모든 사람들이 품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간의 탐구 열정이고, 이러한 지적 탐구가 아마 인문학이 자리 잡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인문학적 방향성이 작가가 의도하는 오늘의 우리가 맞닥뜨린 벼랑에서 살 길이며, 미래의 어떠한 기술진보가 와도 인문학적 탐구 정신을 경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인문학적 방향으로 작가는 이제는 ‘개인주의, 단순주의, 유목주의(노마디즘)’가 대세인 시대가 왔다고 한다.
작가가 주장하는 인문학적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정확히 “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있었다면 뭔가 시중에 범람하는 나열식 언어의 유희라는 인상은 줄었을 것이라고 본다. 인문학적 방향성으로 ‘개인주의’라는 현상을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것이 잘 이해하기 어렵고 그것이 어쩌면 ‘고립주의’로 오해받지 않을까 우려스럽고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공유경제의 “방향”으로 가는 것과 상충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단순주의’와 ‘유목주의’ 에서는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설명보다는 현실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인문학적 방향성에 대하여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작가가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아마 작가가 경영학 박사 출신의 현실 직장인의 시각에서 머물렀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