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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코드 - 신인류 "글로마드"는 어떻게 비즈니스 세상을 바꾸는가
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글로벌 코드 (클로테르 라파이유. 리더스북. 20161015)
가장 중요한 원형(사랑, 건강, 돈 등)을 바라보는 관점은 각 개인이 성장한 고유의 무의식적 메시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작가의 전작이기도 한 “컬처 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특정한 대상(자동차와 음식, 관계, 나라 등)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컬처코드의 의미를 확장하여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가는 세상에서 문화의 기원은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기에 세상은 개개의 문화를 넘어 글로벌적인 무의식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 시기에 이르렀고, 이 글로벌적인 무의식을 ‘글로벌 코드“라고 한다. 작가의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심층적이고 아주 다양하다.
인류를 이해하는 보편적 코드는 정말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어떤 도구들이 필요할까?
자본주의는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난에서 구제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지 24시간 잠들지 않는 혁신적인 네트워크의 출현은 예전보다 더 실질적인 불안과 혼란을 양산하며 종교적인 극단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어 세속적인 정권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글로벌 자본주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보편적인 공간인가, 아니면 지엽적인 공간인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가?
글로벌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보편적 가치와 진리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제각각 고유한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아야 하는, 서로 다른 중심과 세계관이 존재하는 다원적인 공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서구적 가치 체계의 종말, 서구 사회의 민주주의와 관용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깊은 감정적인 차원에서 공감하는 공통적인 무의식적 구조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건 없으며,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를 죽여야 할 운명을 짊어진 것일까?
작가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식의 귀결을 글로벌코드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글로벌코드는 세계 최고의 성공 사례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를 기꺼이 공유하려는 다문화적 인간들로 이루어진 글로벌 부족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글로벌 부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하여 작가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창조하고, 구성하고, 널리 알리는 특정 집단이 존재한다는 중대한 가설을 제시한다. 글로벌 부족은 무슨 일이든 성취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방법을 참조하고, 집단의 동료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인류인 글로벌 부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왕국과 비슷한 신분제를 따른다는 것이다. 정점에는 명예, 성과, 돈을 상징하며 다가서기 힘든 왕실이 있고, 더 젊고 왕실 근처에 살면서 왕실의 초대를 갈망하는 신하가 있고, 주택이나 명품 브랜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있고, 제한과 경계를 넘어서서 바라보고, 시간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창조자가 있고, 글로벌 부족의 자녀인 제3의 컬처 키드, 사람들의 열망을 자극하는 열망자로 이루어져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몇 개 국어가 가능한가? 얼마나 많은 모임에서 활동하는가? 얼마나 많은 기업에서 일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셋 이상에서 긍정적인 답이 나와야 글로벌 부족의 문턱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또한 글로벌 부족은 ‘초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활발할 자선활동을 하며, 유행을 창조하고, 부유함이 은행 잔고의 문제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라고 보고, 예술에 대하여 후원하며, 한두 가지에 집착하는 대신에 다양성을 추구한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품질과 수준에 많은 관심을 쏟으며, 새로운 준거체계를 창조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준거 체계가 당면 과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그 과제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이해로부터 얻은 자유를 바탕으로 대단히 잘 적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카멜레온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시국가로 모이고 수시로 여행을 하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에서도 문화마다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연과 같은 존재이며, 자연은 아름다우면서도 예측하기 힘들다. 남성은 생산과 양, 속도에 알맞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남성을 위한 최고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또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여성은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만,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남성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여성과 결혼하지만, 끊임없이 변한다.”
세계화다 국제화다 하면서 한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영어나 중국어 광풍이 휘몰아쳤던 옛 시절이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통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울고 고통스러워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주장하는 글로벌 부족은 보통 사람들의 세상과는 너무나 동 떨어져있는 다른 세상의 부족이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고, 앞으로 쉽게 평등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작가는 너무나 쉽게 이 세상의 주요한 가치 중에 하나인 ‘평등’ 이념에 대하여 포기하다시피 하고, 공공연하게 불평등한 세상을 옹호하는 듯 한 구절이 곳곳에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인 독자로 하여금 다소 불편하게 만든다. 작가가 서두에서 보여준 거창한 문제 제기에 비해서 뚜렷한 결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무엇인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것은 작가의 서술 방식이 보편적으로 익숙한 기승전결의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고, 책의 편철 자체가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체계가 아무 의미없게 구성되어 있고, 그냥 뜬금없이 불쑥불쑥 다른 주제들이 뛰어나와서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모를 정도로 논점을 흐려져 있는 것이 원인일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개의 문화를 뛰어넘어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무의식 저편에 갖고 있는 공통된 코드가 글로벌코드인데, 이를 기업의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활용함으로써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전략이라는 것이 글로벌 부족을 위한 고급문화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 같다. 벤틀리와 미니쿠퍼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 센츄리온이 제공하는 집시 서비스, 피아트와 브리질식 성공 문화 멜료르지뉴, 외딴 자연에 자리 잡은 반얀트리 호텔의 전략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변화와 적응’ 편에서는 오뚝이 같은 특성을 지니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미래에 집중하는 한국의 특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또한 기술주의가 지배하는 밀레니얼 세대에서 미래를 결정지을 코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기대를 가졌지만 평등과 민주주의의 종말, 기술주의에 의하여 공허한 초연결의 세상에 의하여 지구의 분열과 단절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왠지 허무하고 공허하다.
글로벌 부족민이 되는 것은 몇 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얼마나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살고, 얼마나 많은 기업에서 일해 보았는 것이 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개인이나 집단이 열린 사고와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다른 문화나 시민들에 대하여 얼마나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와 자세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트렌드에 대하여 얼마나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