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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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김영사, 20160909)

소설은 로맨스와 미스터리의 결합으로 탄생한 환상의 스토리텔링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한 소녀의 성장 소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7세기 말은 계몽주의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싹을 띄웠지만 암흑기 중세의 종교적 독선과 아집이 시민의 모든 생활과 의식을 지배하며 공존하였던 전환기라고 할 수 있고, 바다를 개간하여 육지가 바다보다 낮아서 풍차와 방파제가 많은 나라인 네덜란드의 번화한 도시인 암스테르담은 무역과 식민지 개척으로 세계의 패권과 이권을 장악하여 부가 넘쳐났던 곳이 공간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쓰러져 가는 시골 귀족 출신인 열여덟 살의 넬라 오트만은 어머니의 강요로 39세의 암스테르담에서 성공한 상인 요하네스 브란트와 결혼하게 된다. 어머니의 기대가 전이되어 넬라는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 사랑이 가득한 신혼을 꿈꾸었지만 신혼 첫날부터 신랑은 일을 핑계로 가버리고, 혼자 도착한 요하네스의 집에서는 결혼 안 한 늙은 시누이인 마린, 하녀 코넬리아, 도시의 유일한 흑인 하인 오토, 개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냉담하고 차가운 집안사람들과 매일 밤 이상하고 비밀을 간직한 소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대화 내용, 혼자 서재에서 계속 지내는 요하네스로 인하여 넬라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품고 있을 즈음 미니어처 하우스를 선물을 받게 된다. 넬라가 사는 저택과 똑같은 모형의 미니어처 하우스에 미니어처 사람과 물건 등을 채우게 되는데 이것이 앞으로 발생할 비극적 사건의 전조를 알려주는 것 같아 넬라는 미니어처리스트를 찾아 가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사건 전체의 복선을 곳곳에 깔고 있다. 인물의 심리나 성격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과 진행 상황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하여 세심하게 표현하는 것이 여성 작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더구나 작가가 배우 출신이라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론해본다. “우리는 바라는 만큼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라고 작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소설의 곳곳에 그리고 체계적으로 복선과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본다. 암스테르담의 상인 명부인 스미트 명부에 미니어처리스트 광고판에 “모든 것,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 넬라가 미니어처리스트가 사는 집을 찾아가서 본 간판에 새겨진 글귀는 “인간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장난감으로 여긴다” 인데 소설 전체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나 생각하며, 간판의 글귀는 단지 세상의 모든 것이, 보이는 그대로는 아니라는 뜻이라고 해석되어진다. 그리고 미니어처리스트가 넬라에게 전달하는 소포와 함께 전달된 글귀는 소설의 전개에 따른 복선이라고 해석되어 진다. 첫 번째 보내온 소포에 동봉된 글귀는 “모든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여자는 자기 자신의 운명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설계하지 못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넬라는 “인간의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려 있으며, 특히 남편의 손길이 몸에 닿은 뒤 출산이라는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여자의 운명은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존재로서 넬라를 그리고 있다면 억압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 같은 두 번째 보내온 소포에 동봉된 글귀는 “나는 떠오르기 위해 싸우리라.” 이다. 세 번째 전달된 소포에 동봉된 글귀는 “달콤한 무기를 방치하지 마세요.”라고 넬라가 직접 거대 상인의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소설은 진실되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 그리고 용서를 갈구하는 것 같다. 은세공업자 길드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요하네스가 넬라에게 “때론 너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지요. 사람을 깊이 알게 되면요, 달콤한 몸짓과 미소의 이면을 알게 되면, 우리 모두가 숨기고 있는 분노와 측은한 두려움을 보게 되면, 그땐 그저 용서하는 수밖에 없어요. 용서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죠.”라고 말하는데 요하네스가 마지막 재판정에서 자신을 배신한 친구와 연인이었던 자에게 용서를 한다. 그리고 현실주의자였던 마린에 대하여 코넬리아는 “마담 마린은, 사랑은 현실일 때보다는 환상일 때 아름답고, 손에 집힐 때보다는 좇을 때 아름답다고 말씀하시죠.”라고 말하지만, 마린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아기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또한 미니어처리스트의 아버지가 넬라에게 “내 딸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랍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자기 눈에 비친 이 세상의 방식을 무척 경멸했어요. 자기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무언가가 있다고 그리고 그걸 ‘찰라의 영원’이라고 불렀어요. 정해진 시간의 경계 밖에 살고 싶어 했어요. 항상 제멋대로였고, 항상 궁금해 했지요. 시계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 틀에 박혀 살아가는 사람을 조롱했어요.”라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미니어처리스트를 말하였고, 넬라가 “따님이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믿으셨나요? 따님은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영혼을 볼 수 있냐고요?”라고 물었을 때 “저에게 편지를 보낸 다른 여자처럼 철석같이 믿고 있군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고 싶어 안달이 났어요.”라고 미니어처리스트의 아버지가 대답하자, 넬라는 “그렇지 않아요! 한 가지 분명한 건요. 따님이 제 주권을 되찾아주었다”고 반박하며 자신이 한 말이, 그 주장이 너무도 진실이어서 넬라는 잠시 침묵하고, “그 아이는 당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돌려주었지요. 내 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난 그 아이가 지닌 특별한 관찰력이 지나치게 멀리갈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려 했어요. 그 아이가 본 것을 똑같이 볼 건지 말 건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라고, 만약 내 딸이 답장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당신이 이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아이가 하려는 말을 깨달았다고 생각한 거지요.”라고 그녀의 아버지가 마무리한다.

정말로 짧은 결혼 생활 동안 발생하였던 수많은 사건과 이로 인한 고통, 그리고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벌인 힘겨운 사투 속에 넬라는 성장하고 성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보며, 그 과정에서 아끼는 여러 사람을 잃었지만 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고 세상은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희망의 직물을 짠다. 그 직물을 짜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뿐이다.”라고 넬라가 마지막 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희망과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며, 요하네스가 넬라에게 한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의 부를 실제로 만질 수는 없어요. 그건 허공에 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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