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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레디셋고, 20160828)
파스칼 보니파스라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량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책을 얼핏 보면 그냥 20C, 21C 현대국제정치사라고 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분석틀이 지정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현재를 있게 한 굵직한 역사적 이정표들을 짚어보는 것이 이 책을 쓰는 이유라고 밝힌 작가는 사건들을 연속성의 맥락에서 재배치하고, 어떻게 협력과 대립이 차례로 일어났는지 또는 동시에 이뤄졌는지를 보여줄 것이며,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가두는 어두운 덧이 아니라 밝게 비춰야 한다는 관점에서 냉전, 데당트, 양극화 이후의 세계로 3부로 구성하여 서술하고 있다. 국제 정치는 공존과 평화, 번영을 하기 위해서 상호 협력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측면과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서 힘(power)의 절대 우위에 근거하여 보는 현실주의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제1부 냉전(1946.1947~1962)
‘냉전’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데서 시작해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종말을 맺는 것으로 종종 정의된다. 다시 말해 ‘양극화 세계’로 지칭될 수 있는 역사적 시기를 말한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양극화 세계’를 “힘이 다른 주체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두 체제의 주변으로 대부분의 정치 단위들이 헤쳐 모이는 역학 관계의 형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제관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양극의 라이벌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국제 분쟁이나 위기가 야기될 때면 언제나 그 주역 중 하나는 워싱턴 또는 모스크바와 연관을 맺고 있었다. 1990년대에 일어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공산주의 블록의 붕괴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가져왔다. (13p)
만국 공통의 시스템을 둘러싼 라이벌관계가 형성됐던 18세기와 19세게 국제관계가 아니라, 세계를 이질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두 개의 대립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던 것이다. 진정한 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레이몽 아롱) 두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적대적이었지만 한국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충돌 양상에는 일종의 합리성이 존재했다. 한국 전쟁은 전쟁에 나선 국가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은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냉전은 적대적인 두 세력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로 실현되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난관을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미국과 소련 모두 서로를 파괴할 수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서로 상대가 사라져버리길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전선동 전쟁이었다. 냉전 이후 벌어진 크고 작은 160번의 군사적 충돌과 4,000만 명의 인명 피해는 전면적이 아닌 주변부에서 일어난 분쟁이었다. 힘의 균형을 위한 투쟁과 전통적 개념의 지정학적 라이벌 관계에서 나온 전쟁이라기보다는 선과 악이 등장하는 도덕적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전쟁은 미국에 유리했다고 헨리 키신저는 보았다. (14~15p)
두 진영은 냉전의 기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욕망이 전 세계에서 마국의 영향력을 무제한으로 키웠고, 그 욕망이 전쟁 중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소련을 통해 얻어낸 권리를 부정했기 때문에 냉전이 싹튼 것으로 봤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시스템 그 자체가 갖는 메시아적 시각, 영토 확장주의적 성격, 지배에 대한 욕구 등의 특성이 전통적 러시아 제국주의에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32p)
제2부 데탕트(1962~1990년대 초반)
1962년은 확실히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세계가 핵전쟁의 바로 곁을 지나치면서 두 초강대국에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 진영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준 해이기 때문이다. 대립을 절제하거나 적어도 틀 안에 넣어둬야 했다. 또한, 두 강대국이 세계를 운영하는 데 있어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함께 인식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드골과 중국 지도자가 설파했던 그 유명한 공동통치의 개념이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는 영향권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적수이자 파트너가 되었다.(102p) 데탕트가 동서 진영 대립의 종말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다만 대립관계를 더 통제 가능한 것으로, 더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104p)
제3부 양극화 이후의 세계(1990년대 초반 ~ )
그러나 서방세계, 특히 미국은 권력에 도취하는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자유세계의 우두머리’로 지내왔다. 소련과 동유럽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면서 이 ‘자유세계’는 외연이 확대됐다. 워싱턴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명백한 운명’에 근거해 미국이 더 거대해진 자유세계의 선두에 서서 독주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합법적이고도 반길만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단지 서방세계 진영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리더가 되고자 했다. 미국은 다원주의 체제의 새로운 질서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또한 동서대립의 종말이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국가들 전체의 집단적 승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관점 대신 미국이 상대국인 소련에 대해 승리를 거둔 것이라는 매우 좁은 의미에서 해석했다. (251p)
폴 케네디는 매번 한 제국이 자신의 자리를 다른 제국에 넘겨주게 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제국들은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까지 영토를 늘렸다는 ‘제국의 과잉팽창’ 이론을 내세웠다. 미국이 제국주의적 과잉팽창의 길을 가고 있었다. 진정한 문제는 미국의 쇠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게 아니라, 쇠퇴의 속도를 내는 게 불가피한지 아닌지 아느냐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무대로 한 미국의 개입과 이권은 동시에 제어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소련이 안고 있던 위험요소들에 대해서도 진단했는데, 개인이 자유롭게 주도하는 새로운 정보 통신 기술이 등장했는데도 너무 경직된 체제를 유지한 데서 오는 난관이었다. 사실 소련은 내부로부터 무너진 것이어서 케네지의 예측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다. (254p)
국제화된 세계에서는 아무리 국력이 강하다 해도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의제와 규칙을 정하고 따르도록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미국의 실패는 세계질서에서 독주체제가 불가능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어떤 세계가 바람직한 곳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이해 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양화된 국제화 세계에서는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262p)
작가는 결론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확실하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며,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 시기마다 강대국 간 체계적 합의와 인류애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한 희망은 있었다고 본다. 동시에 진정한 공동 안보 노력은 얼마 못가서 흩어져버리곤 했는데 세 번 모두 불신이 신뢰를 이겼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립구도는 그 개념이 바뀌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 핵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대립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방 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서방 강대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독점 구도가 더 이상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368p)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다원주의로 우리는 전후 네 번째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인류를 짓누르는 중대한 위협에 적절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국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인데, 이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항하며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고 모두의 의식주가 보장된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국제 정치에 다원주의 체제가 도래했는지에 대하여 다소의 의문은 있지만 결국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릴 때 우리가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반도가 지정학적 숙명에 따라 늘 강대국에 둘러쌓여 강탈과 압제를 받아 왔다고 하는데, 이는 굉장히 피해의식주의라고 볼 수 있겠다. 한반도에 아직도 민족과 국가가 존속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자부심을 가지자고 하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치고 강대국에 둘러싸이지 않는 나라가 몇이나 될 것인가.? 민족이나 국가가 강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민중의 의지는 정권의 의도보다 역사의 가장 위대한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정의해준다고 1989년 12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말한 것을 개기며, 한반도의 민중도 다시 한 번 더 좀 더 치열하게 각성하고 행동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