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지음, 박여명 옮김 / 북펌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프롬북스, 20160806)

소설의 도입부는 세계 도처를 무대로 하여 숨막히게 사건을 전개시키고 있다. 멕시코의 항구도시인 아카폴코에서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참가자들이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브라질 상파울라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벌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들에 연쇄 폭탄 테러가 가해지고, 사진과 관련된 영상 데이터를 훼손하는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는데 사건들과의 관련성과 고리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사건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한편 신경미학자로서 보스턴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인 헬렌 모건은 자신의 뇌에 이상한 얼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거식증을 치료받고 있는 딸 매들린이 실종되었다는 소식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아버지의 실종과 매들린의 실종이 연관이 있다는 파트리크 바이시로부터 연락을 받으면서 사건의 전개는 급속하게 진행된다. 더구나 시간적으로 소설 중간 중간에 1,500년경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로 스트라니에로 그리고 다빈치의 애제자이자 다빈치를 사랑하는 살라잇, “신성한 비례”를 저술한 루카 피치올리를 등장시켜 역사적 사실과 일부 접목시켜 소설의 사실성과 박진감을 더하고 있다. 소설 전체적으로 헬렌을 통해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단어 하나하나마다 색으로 표현하고, 거꾸로 그림이나 색을 보면 소리가 들리는 공감각적 표현은 이채롭다.

시공간적으로 소설의 무대를 종횡무진하여 전개시키는데 반해 모든 사건의 실체적 범인을 소설 초반에 바로 등장시켜 추리소설의 흥미를 다소 떨어뜨리지만 사건들과의 연관성와 사건의 목적과 이유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가고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우리들의 틀을 거꾸로 원점에서부터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소설이라고 본다.

인간들은 뭔가를 복잡하고 어려운 현상을 단순하고 쉽게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고 또 숫자로 재단하기를 좋아한다. 신과 동물의 중간자적인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신의 영역으로 침범하여 모든 현상과 사물을 해석하고자 하는데서 오는 인간의 자만과 부족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모나리자는 신성 비율에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을 모델로 하여 여자의 초상화를 통해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여자의 숭고함은 자연의 모범이 될 거고, 다가올 미래에 그 여자는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로 스트라니에로가 말하는 대목은 숭고함과 함께 섬뜩함을 느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의 비율이 아름다움에 관한 다른 모든 정의와 관념을 밀쳐 내고 있다. 황금비율을 따라 만들어진 모든 것은 인간의 뇌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영향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황금비율 즉 아름다움이라는 바이러스의 소스코드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도든 사건을 발생시킨 핵심이라고 해석되어진다.

가끔 TV를 보면 요즘 인기있는 수많은 걸그룹의 현란한 춤동작과 노래를 보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 걸그룹 멤버들의 얼굴들이 거의 비슷하고, 다른 걸그룹 멤버들과의 차별성도 없이 그야말로 인조인간들처럼 거의 똑같은 얼굴과 표정, 비슷한 복장에 비슷한 리듬과 춤을 추고 있는 현대 사회에 그야말로 황금비율에 종속되어 개성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 우리들의 뇌는 이미 황금비율에 따른 아름다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우리 입맛이 각종 화학 감미료에 감영된 것처럼. 그래서 이 사회는 성형수술, 다이어트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병든 사회가 되어가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일단 나 자신부터 두 딸들이 어릴 적부터 초우량아(성장일수에 평균적으로 정해진 몸무게로 평가했을 때 1% 이내)로 커가는 것을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고 노력했던가? 특히 여성에게는 모든 것을 떠나 그리고 우선하여 아름다움이 미덕이며 가치이며 심지어 돈이자 권력인 사회에서 부모로써 방관할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은 이 세상에 만물이 창조되고 난 이후부터 아니 수백만년을 진화하면서 적자생존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아름답게 여겨지는지에 대해 더 많은 의문점들이 있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이에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떨지 몰라도 두 딸들의 가장 아름답고 예쁘게만 다가온다. 마누라가 점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반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