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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본질
송신철 지음 / 지혜의나무 / 2016년 6월
평점 :
업의 본질 (송신철, 지혜의나무,20160628)
자본주의 본질은 이익만 있으면 무엇이든 하고,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및 기업가 계급이 그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본가나 기업가의 현대적 역할을 “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작가는 사람들이 입고 먹는 것을 이어가는 것이 業이라고 다소 고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業의 자연성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먹는 것이고 입는 것이다. 業이란 외부로부터 강제적으로 행하여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는 단순한 행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여 자신의 業을 지킨다.”고 그야말로 정치색과 이념성의 색깔을 쫙 빼고 단순하고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나름 건전하지만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상인=기업가는 상업=기업을 개인소유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본을 넘어 부채와 자산은 물론 훨씬 종합적인 일체의 유무형 사업상의 권리로 구성된다. 경영권 승계는 사업상의 권리 전체를 가장 잘 유지, 확대할 수 있는 역량과 인내를 가진 자에게 이뤄져야 한다.”는 작가의 입장은 사업을 자본가의 개인소유를 넘는 사회적이고 종합적인 실체로 파악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지만 현대에서 기업이 가지는 막강한 권력을 생각하여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다면 이 또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근검절약하면 이룰 수 있다고 고전경전 특히 삼국지 중에서 조조편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화식열전’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작가의 경험과 배합하여 풀어 나가고 있는데, 어느 신문에 연재된 컬럼인지 유사한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고, 흐름이나 맥락을 찾기가 어렵고, 버릇이 돼서 그런지 큰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읽고 싶었는데 이 부분이 다소 불편했다. 業이란 사람들의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바로 극한의 아름다운 소리와 극한의 아름다운 색을 추구하는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극한의 맛과 극한의 향을 취하려는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하 사람들이 화락하여 모두 이익을 위해 모이고, 모두 이익을 위해 떠난다고 했는데, 업이란 바로 천하 사람이 모두 이익을 위해 모이도록 하는 것이고, 모두 이익을 위해 떠나게 되는 본연의 상태를 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업은 오직 자연의 시기에 의할 뿐으로 사람의 노력에는 의지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업은 시기의 변화에 따른 변동을 중요시한다.
재화와 물자가 없는 사람은 몸으로 힘써 일하고, 약간의 재화와 물자가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서 더욱 더 불리려하고, 이미 많은 재화와 물자를 가진 사람들은 시기를 노려 더 큰 비약을 꾀하려 한다. 이것이 작은 업에서 큰 업으로 진화하여 나가는 것으로 대개 사람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 것의 열배가 되면 몸을 낮추고,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 것의 백배가 되면 이를 무서워하고 꺼리며, 상대방이 재산이 자기 것의 천배가 되면 그의 부림을 기쁘게 받고,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 것의 만 배가 되면 기꺼이 그의 하인이 되는데 이것은 만물의 이치라 하였다.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상업을 이루는 데는 시세의 변화를 보아 행동하여야 한다. 시세의 변화란 가격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사물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사물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예측하여서, 그 방향과 상인의 생각이 부합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라 하더라도 일종의 변화하는 규칙이 존재할 것이다. 똑같은 영향을 주면 똑같은 반응을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므로, 사물의 변화하는 고유의 성질은 어떤 일정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일정한 변화의 법칙이 ‘사물은 이익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로 사물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극히 이기적인 개체라 할 수 있다. 단지 사물의 어떤 방향으로 번화하기를 좋아하는지는 변화하는 결과에 따라 매순간 다시 달라질 수 있으나, 언제든지 사물은 반드시 사물이 이익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스스로 ‘상인’이라 하지만 이제는 달관한 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도 많이 보인다. 사람들이 유형의 본능을 추구하고 이목구비의 감각의 극치를 누리려 하는 동안, 상인은 이목구비의 감각을 제어하며 사람들이 감각의 극치를 잘 누릴 수 있도록 하면서 ‘내가 일한다’는 무형의 안빈낙도를 즐긴다고 할 수 있다.(상인의 본능) 상인이란 성한 것이 극에 이르면 쇠하고, 쇠한 것이 극에 이르면 성하기 시작한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변화를 이용하여 세상에 사물이 많아지면 사들여서 사물을 적어지게 하고, 세상에 사물이 적어지면 많이 내보내서 사물이 많아지게 하여 평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상인이란 춘하추동 자연의 변화에 관계없이 오로지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부자와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商人(사업가)이기도 한 작가의 業에 대한 사고가 건전하다. 그래서 작가가 재벌가의 3, 4세 혈통 상속, 무세금 판법상속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세태에서 귀감이 되어야 할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복잡해 보이는 사물 안에도 반드시 간단한 속성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사물은 반드시 사물의 이익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인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정직한 기업인, 성공한 상인이 되셨다고 본다. 그러나 현상은 이 보다는 훨씬 복잡다단한 구조와 체제 그리고 사람들이 엮여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개인의 나태, 무능이나 낭비 때문인지 아니면 근저의 원인이 무엇인지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시원하게 답을 얻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