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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25년 6월
평점 :
서중석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진보사학의 기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늘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방대한 연구와 집필을 이어왔다. 강의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열정과 치밀함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은 단순히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과 활동을 정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망명과 이주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정치사상, 사회적 관계, 문화적 실천, 여성들의 역할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역사 속에 잠들어있는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대 독립운동사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1910년대 내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고, 3·1운동 이후 크게 확대되며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저자는 이를 독립운동 군사 기관이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의 상징적인 장, 민족의 자유를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 사상과 전략을 모색한 공간으로 조명한다. 그 속에서 독립운동은 단지 무력 투쟁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과 사상적 고민이 어우러진 총체적 실천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학사-부민단-한족회로 이어지는 조직들의 전체 상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경학사는 이주 사회의 교육과 자치를 중시했고, 부민단은 군사적 성격을 띠며 무장 투쟁의 기반을 다졌다. 한족회는 중국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활동을 확장했다. 이처럼 조직들은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편되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며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저자의 사회사적 시각이다. 독립운동을 위인 중심의 정치사로만 보지 않고, 망명 공동체를 이룬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노력을 비중 있게 다룬다. 노동과 교육, 문화 활동, 여성들의 참여까지 서술하여 독립운동사가 단지 남성 지도자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도록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독립운동을 보다 넓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과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독립운동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흔히 영웅적 인물들만 떠올리기 쉽지만, 서중석 교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공동체적 노력이야말로 역사를 움직인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망명지에서 전개된 교육과 토론, 문화 활동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정신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은 정치사상사,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역사서다. 1910년대 한국인의 치열한 삶을 알고 싶거나 독립운동의 현장을 새롭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국 사회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온 서중석 교수의 저작답게, 이 책은 독자에게 오래 남는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