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는 흥분에 차서 집으로 돌아와 계산에 몰두합니다. 얼마 뒤 그는 당황스러운 이론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것은 입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근본적인 기술로서, 이 이론에서는 입자들의 위치는 모든 순간 기술되지 않고 오직 특정 순간의 위치만 기술되는 것이었습니다. 입자들이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는 순간만 말입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두 번째 초석이자 가장 어려운 열쇠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물의 관계적 양상입니다. 전자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할 때에만 존재합니다. 다른 무언가와 충돌할 때에 어떤 장소에서 물질화됩니다.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의 ‘양자도약‘이 전자가 실재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이죠.
양자역학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세 가지 측면을 발견합니다.1) 입자성 : 계의 상태 정보는 유한하며, 플랑크 상수에 의헤 제한된다.2) 비결정성 : 미래는 과거에 의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 더 엄격한 규칙성조차도 실제로는 통계적이다.3) 관계성 : 자연의 사건들은 언제나 상호작용이다. 한 체계의 모든 사건들은 다른 체계와 관계하여 일어난다.양자역학은 세계를 이런저런 상태를 가지는 ‘사물‘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과정은 하나의 상호작용에서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경과입니다. ‘사물‘의 속성은 오직 상호작용의 순간에만, 즉 과정의 가장자리에서만 입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도 오직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속성들은 단 하나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하라 수 있습니다.이것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이 사물 본성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서 밝혀낸 것입니다.
어떤 교제에서든 진도를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유지함으로써 자기가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를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세심한 경청 또한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만큼이나 남이 하는 말을 듣는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다고 생각할 때, 사실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 자신에 관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보내는 삶의 척박함은 당신이 자기 자신과 친밀해질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 때로 이것은 그동안 숨어 있던 고통을 낱낱이 드러내 준다. …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다. 프랑클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는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해야 할까?˝ ˝나를 행복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같은 커리어 관점의 질문은 적절한 질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깨달은 진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생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클은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정신과 의사에게는 고통은 연구하고 또 그것을 누그러뜨릴 의무가 있음을 깨달았다.
미국 공중보건부대 의무감을 지낸 비벡 머시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환자를 진료할 때 가장 흔했던 질환은 심장병이나 당뇨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발가벗겨지고 외톨이가 된 사람들은 자기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즉 자기 종족의 오랜 역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자기 부족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근본적으로 부족주의로 이어진다.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 현상을 포착했다. 정치적인 광신도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그녀는 외로움과 정신적 공허함이라는 두 가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외로움은 테러의 기반이다˝라고 썼다.